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다가섬을 멈추지 않았던 삶으로 영원한 사표로 남을 고 오기선 신부의 동상이 꽃동네에 들어섰다.
오기선신부동상건립추진위원회(회장=이진애)는 4월 28일 오전11시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생활관 앞에서 서울대교구 황인국 몬시뇰과 대전교구 정하상교육회관장 김정수 신부 등 성직·수도자와 평신도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 신부의 동상 제막식을 갖고 뜻을 기렸다.
오 신부의 인도로 사제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 가운데 큰아들격인 황인국 몬시뇰은 이날 행사에서 『주님의 길을 가르쳐주었을 뿐 아니라 그 길을 몸소 걸어간 오신부를 새롭게 마음에 담기 위해 동상을 건립하게 됐다』며 『항상 하느님 안에서 희망에 가득 찬 삶을 보여준 오 신부의 삶을 기억하고 따르자』고 말했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는 『오늘의 꽃동네가 있게 된 데에는 오기선 신부의 하느님을 위한 결단의 삶도 큰 몫을 했다』며 『아버지로 모시고 따를 수 있는 오 신부와 같은 이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 오기선 신부의 생애
오기선(요셉) 신부, 한국교회에 전 생애를 바친 그의 이름 앞에는 「죽는 날까지 사제직의 완성에로 한발한발 다가선 이」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다.
1907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서울성신대학을 졸업한 오신부는 32년 12월 17일 사제품을 받았다. 1937년에 프란치스코 재속 3회를 설립하고 41년에는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주교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는 1963년 6·25때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 3000여명을 훌륭하게 키워낸 공로로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1971년 은퇴 후에도 103위 복자의 시성운동과 성지 발굴과 개발에 쏟은 그의 발걸음은 나라 안에만 머물지 않고 이웃나라로도 이어져 마카오를 비롯해 필리핀 롤롬보이에 김대건신부의 동상을 건립하는 등 순교자현양에 새로운 눈을 뜨도록 했다.
여든살이 넘은 나이에도 김대건 성인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 성지순례에 나선 오신부는 1990년 선종하기 직전까지도 중국 금가항, 횡당, 소팔가자 등에 김대건 신부와 이승훈의 기념비를 세울 전초작업을 벌일 정도로 순교신심에 강한 열망을 보였다. 이런 그의 신앙심과 선각자적 삶은 그 자체로 모든 신자들의 사표가 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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