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백만장자, 특히 한순간의 행운으로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풍조는 과연 이대로 두고 볼 일인가. 더욱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설파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우리는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난과 부유함의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해볼 일이다.
백만장자의 꿈
『귀하를 백만장자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백만장자의 꿈을 실현해드립니다』
『부자 양성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돈 되는 것만 확실히 짚는다』
『부자의 생각을 훔쳐라. 그러면 부자가 됩니다』
최근 인터넷에 불고 있는 백만장자 신드롬은 거의 광적이다. 각종 인터넷 포탈사이트마다 매일 백만장자의 꿈을 좇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으며 한 순간에 수억, 수십억의 행운을 부추기는 선정적인 선전 문구들이 남발되고 있다. 메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백만장자의 유혹은 네티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최근 한 인터넷 마케팅 조사업체가 20대 이상 네티즌 7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7%가 인터넷 복권 구입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이목 때문에 거리에서 복권을 구입하는 비율이 적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복권을 인터넷으로 산다.
인터넷 복권 열풍
인터넷 복권 열풍이 불면서 복권이 당첨됐던 지역의 복권만 전문적으로 파는 사이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시중에서 500원, 1000원 하는 복권을 웃돈을 받고 팔아도 불티나게 팔린다. 복권 사이트에는 이처럼 당첨된 사람들의 체험담이 올라오고 이를 읽는 네티즌들은 누구나 자신도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또 다시 복권을 구입한다.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모습을 드러낸 복권의 종류는 총 16가지.
월드컵복권, 인터넷주택복권, 또또복권, 주가지수인터넷복권, 슈퍼더블복권, 사이버기술복권, 빅슈퍼더블복권, 인터넷복지복권, 지방자치인터넷복권, 즉석식관광복권, 슈퍼코리아연합복권, 슈퍼인터넷관광복권, 산림청인터넷복권, 플러스플러스복권, 빅로또, 사이버엔젤복권 등이다.
이런 열풍에 힘입어 이들 인터넷 복권을 파는 업체들은 엄청난 매출을 올렸고 그 증가 추세는 점점 더 가파른 곡선을 띤다. 예를 들어 한 인터넷 복권 전문 업체는 지난 1분기 인터넷 복권 매출액이 51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 복권 매출액 7억4천만원에 비해 700% 증가한 수치다.
서점가에도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모임도 생겼고 이른바 백만장자 클럽 사이트까지 생겨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포탈 사이트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끄는 커뮤니티들이 생겨나 이미 수백 수천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수만명에 달하는 회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한 사이트는 『월급쟁이는 절대로 백만장자가 될 수 없다』며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일을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서점가에도 백만장자의 구호가 드높다.
미국을 휩쓸고 한국에 상륙한 마크 피셔의 「백만장자 키워드」, 릭 에들먼의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지니 세일즈가 지은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만나라」 등 부자가 되려면 이렇게 하라는 식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 나온 책들 중에도 「백만장자로 살 것인가 가난뱅이로 살 것인가」, 「백만장자 클럽」, 「부자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장사를 시작하라」 등의 책들이 눈길을 끈다.
수년 전에는 흡사 전국이 주식 객장이 된 듯 주식투자를 부추기는 선전과 광고 문구들이 거리와 신문 지면을 메우고 있었다. IMF로 허리를 졸라맨지 불과 1년 반만에 불어온 주식 열풍은 재테크의 지혜를 한국 사회의 가장 존경받는 미덕으로 올려놨다. 80년대 부동산 투기바람과 맞먹는 재테크 열풍 속에서 노동의 신성함은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날 거기에 더해 일확천금의 꿈이 난무하는 가운데 더 이상 땀과 노력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은 채 운에 기댄 한탕주의가 사람들의 머릿 속을 지배하고 있다.
노동없는 재화획득의 꿈
자본주의 사회, 물질만능의 가치가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도덕과 윤리를 한꺼풀 벗겨내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가 지상 최대의 관심사인 경우가 많다. 재화획득의 능력은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모든 교육도 바로 돈벌이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한 수련 과정으로 간주된다.
첨단 기술로 엄청난 재산을 벌어들이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또는 천부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 등 금융 전문가가 젊은이들의 우상이며 모든 명예와 성취, 야망들은 바로 「돈」의 뒷받침을 받는다.
물론 돈, 재화가 개인과 사회의 생활과 존재에 꼭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다. 의식주의 해결은 물론 아이들 교육, 사회적 지위와 명성 그 모든 것들이 돈이 없으면 불가능해지는 사회 속에서 누구든지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재화의 획득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지불되어야 하고 땀을 흘려 일을 하고 난 뒤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오늘날 이처럼 일확천금의 꿈이 횡행하는 것은 아무리 땀 흘려 일을 해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척박하기만 하다는 서민들의 넋두리인 듯도 하다. 열심히 일하면 그에 따라 충분한 대가가 지불되고 그것으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충분히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이같은 헛된 꿈과 망상들은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또 있다. 어쩌면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즉 「수단」으로서의 재화가 「목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재화를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재화 자체가 갖는 위력에 집착함으로써 수단이 목적으로 가치전도가 발생하는 것이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이 있으면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 자체가 행복은 아닐지라도 돈이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 땀과 노력으로 얻어야할 대가 온 사회에 「백만장자」의 꿈이 확산되고 있다. 한순간의 행운으로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풍조는 과연 이대로 두고 볼 일인가. 교회는 합당하게 땀 흘려 일하고 노동의 신성함과 기쁨을 깨달아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당부했다. 예수는 사람이 재물에 탐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헛된 것인지를 어리석은 부자, 부자와 가난한 나자로의 비유 등을 통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고는 2천년의 시간을 넘어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예수는 모든 사람들이 삶의 바탕이 되는 재화의 소유와 이용을 포기하도록 원한 것은 아니다. 예수는 부자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물질적인 도움도 받았으며 교회는 사회적 가르침을 통해 사유재산과 이윤의 추구가 정당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목헌장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 넉넉한 재화를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함으로써 사람들이 단지 최소한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충분한 재화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교회는 마찬가지로 재화를 획득하고 사용하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에 합당하게 땀 흘려 일하고 노동의 신성함과 기쁨을 깨달아야 하며 과도한 사행성 투기에 몰두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즉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고 노동의 대가를 얻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그것이 일확천금의 사행심이 바탕이 되어 있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해 땀흘려 일해 그 노동의 대가를 얻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