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도미니코 수도회 영성 (2)
성 도미니코가 세운 수도회의 특징은 전통적인 수도회의 정신을 살면서도 교회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 그것은 수도회를 일정 장소에 국한시키지 않고 규칙을 통해 인적 구성을 갖는 데 있었다. 수도회의 삶이 특정한 장소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도 통일성을 유지하여 복음적 정신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각 단체의 원장(prior)은 각 단체에서 뽑았으며 지역의 장은 원장들이 모여뽑았고 총장은 지역 총회의 대표들이 뽑았다. 그러므로 수도회의 최고 기구가 법적으로 최고 기관이 되므로 전체적인 통합에는 문제가 없었다.
성 도미니코는 형제들에게 수도자로서 좋은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서원을 통하여 성직수도자로 살았고 규칙에 따르는 엄격한 삶을 사는 수도자로서 사도들을 본받았다. 사도적 삶이란 엄격히 말해 주 예수님과 함께 살던 사도들의 생활을 의미한다. 주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의 정신을 배우고, 배운 것을 밖에 나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도미니코는 사도적 삶을 근본적으로 살았다. 그의 이상과 삶의 모범은 동료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사실 창설자의 언행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새로운 설교 수도 공동체는 사도들을 모방한다는 사명감에 젖어 있었다. 주님과 함께 지낸 사도들이 밖에 나가 사람들을 가르치고 돌아와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을 이들은 본받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검소한 삶을 이상으로 삼았으므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다. 가난한 그리스도, 가난한 사도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만을 따라나선 사도들이 사방을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한 삶의 모습은 그들의 이상이었다. 이들의 가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소유」로 살아가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었다.
그 당시 교회를 등진 이단자들은 자신들이 사도들을 본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사도적 삶」은 자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사실 피에르 발도아는 장사를 하여 모은 많은 재산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고 군중에게 설교를 하고 다니면서 자기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 리용의 가난한 자들이라고 떠벌리면서 교회의 부패상을 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 도미니코는 이들의 주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도 사도들을 본받아 순회 설교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유의 삶은 분명히 그 시대에 부응한 삶이었고 새로운 양식의 수도 공동체였다.
또한 이들은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 학문 연구를 중시하였다. 이리하여 공부하는 수도회로 이름이 나기 시작하였다. 회원들의 일부가 파리, 볼로냐, 쾰른, 옥스퍼드 등지에서 교수로 활약하게 되었고 그들의 영향력은 실제로 대단하였다. 대표적 인물은 성 대 알베르토와 그의 제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이들은 설교와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선교에도 치중하였다. 1232년부터 유럽 북부와 동유럽까지 이들에게 선교활동이 맡겨졌고 아시아와 동양에까지 그 사명이 확대되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학자 턱웰 교수는 자신이 속한 설교자 수도자들을 가난한 설교자들, 교육받은 설교자들, 사도적 설교자들, 순종적인 설교자들, 적극적인 설교자들 그리고 개혁 설교자들이라고 평하였다. 사실 이 수도회는 성경에 등장하는 사도들처럼 가난하게 살면서 적극적으로 이단에 대적하여 구원의 진리를 열심히 편 설교자들이었으며 상부의 지시에 순종하는 설교자들이었고 이를 위하여 기도와 학문으로 무장한 설교자들로서 13세기이래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수도회이다.
13세기는 도시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으므로 자연 경제에서 화폐 경제로의 이행은 농업경제에 기반을 둔 경제 구조가 초기 자본주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설교 사목은 도시민들을 겨냥할 수 있었다. 이들의 영혼 구령에 대한 설교 사목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민들은 이들을 환영하였다. 이들의 정열적이고 유식한 설교는 군중들을 사로잡았고 탁발수행도 좋게 받아들여져 신자들의 호응도 높았다. 그러자 자연적으로 기존 세력(기득권)과의 마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개종자들을 환영하였고 여성 개종자들을 많이 돌보았다. 이 사목은 13세기 여성 운동이 교회 안에서 확고한 지위를 얻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여성 수도 공동체가 생겨난 계기가 되었다. 사실 도미니코는 제2회인 여성 수도회를 창설하고 재속 신자들의 제3회도 조직하였다.
도미니코 성인의 생애에서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영성은 성모신심이다. 성모신심의 중요한 표현은 로사리오 기도이다. 이 기도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성 도미니코가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신심적인 전통에 의하면 성인이 알비파 이단자들 가운데서 일하고 있을 때 성모님이 발현하셔서 로사리오를 주시면서 이를 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사도직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이 기도가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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