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흙을 빚으며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습니다. 숱한 흔들림과 아픔안에서도 꿋꿋하게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건 하느님의 은총 때문입니다』
옹기를 구워오며 장인의 외길을 고집한 최길동(바오로·60·청주 옥천본당)씨.
가난의 아픔과 함께 옹기와 함께 한 기나긴 세월 속에서 그가 삶의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 때문이었다. 최씨는 삶의 고비 때마다 하느님께 의지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한다.
『하느님은 제게 있어 아버지며 친구였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하소연도 하느님께만 했습니다. 하나하나 구워내는 항아리 앞에서 바친 주모경은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그는 집 근처 언덕의 공소에 올라 홀로 기도를 바친다. 언제나 마음의 위로를 주시던 하늘에 계신 그분께.
최길동씨가 처음 옹기를 만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그가 열다섯 살 때. 군입대 한 형을 대신해 옹기점 막일꾼으로 들어가게 되면서이다. 우마차로 흙을 날라오고, 땔감 나무를 베고…. 옹기를 구워내기 위해 불가마 앞에서 며칠씩 밤을 지새기도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부친과 고모부가 옹기장이로 사는 것을 보고 힘들어 도망을 가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결국 가난에 밀려 세월에 밀려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 길로 들어서야 했다.
아버지를 따라 이삿짐 보따리를 풀기도 여러번. 어머니와 동생들과 셋방을 전전하며 돼지를 키우고 항아리를 내다 팔았다.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월남에도 다녀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집안 꼴은 더욱더 비참해지기만 했다.
이러한 세월의 질곡 속에서도 최씨는 옹기장이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마련한 것이 충북 옥천군 현리에 위치한 지금의 옹기 공장 「안내토기」. 그 당시 돼지를 판 돈 8만원에 인수한 공장은 최씨의 새로운 인생길이 시작되는 공간이었다.
현재 옹기 작업은 그의 수하생들 서너명이 이어가고 있으며, 최씨는 불가마의 온도를 맞추는 데만 전력을 다한다.
『단순히 항아리를 굽는 기술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것을 지켜나가겠다는 「양심」과 「장인의 혼」입니다』. 이러한 정성으로 최씨는 지난 91년 인체에 해롭지 않은 「무공해 재래식 항아리」와 「냉장고용 김치독」을 개발·생산할 수 있었다. 특히 현대감각에 알맞게 고안된 김치독은 이미 의장특허까지 끝냈다.
옹기굽는 일에 평생을 바친 최길동씨. 어느덧 60고개의 인생길에서 아직도 해야할 일이 하나 남았다고 강조한다.
『40여년 전 하느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꼭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겠노라고. 당신 품으로 가기 전에 공소를 다시 지어드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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