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분야에서의 몇몇 주제들과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기초에는 결론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측면, 곧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선물로서의 인간 생명은 그 첫 순간부터 철저히 존중되어야 하며, 그리고 과학 기술은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한계성을 인식하면서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
가톨릭 교회의 인간 생명에 대한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모상이고, 각인이며, 그분 생명의 숨결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시며, 따라서 인간은 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또한 선한 것이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인간 생명의 선성(善性)에 대한 근거로서 인간은 『이 세상에 하느님을 증거하는 존재이고, 그분께서 존재하신다는 표징이며, 그분 영광의 흔적』(창세 1, 26~27 시편 8, 6 참조)이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들의 생명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영광 그 자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인간은 현세적인 존재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충만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며, 따라서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가 곧 인간 존재이다.
인간 생명에 대한 이러한 기초에서 인간 생명의 특성으로서의 신성함과 불가침성이 드러난다. 인간 생명의 신성함, 선함 그리고 불가침성이라는 특성은 결국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제공하게 된다.
2. 인간 생명의 시작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는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생명윤리의 중심에 서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문에서 다루었던 인간 출산의 문제나 배아 복제의 문제 모두가 인간 생명의 시작과 관련된 문제를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명이 탄생하는 최초의 결정적인 순간은 난자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가르친다. 이 순간에 유일하고도 반복되어질 수 없는 유전인자로서 아버지의 생명, 어머니의 생명과 구별되는 새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며, 따라서 난자와 수정이 이루어지는 수정란의 시기는 이미 인간 생명이 시작된 시기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정란에서부터 이미 인간 생명은 시작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 존재의 첫 순간에서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수정란이나 복제된 배아 모두 하나의 인격적 개체로서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만일 인간 배아에 관한 연구나 실험, 배아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의료조작이 배아가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온전성을 거스르게 된다면 이는 당연히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3. 인간에 봉사하는 과학 기술
오늘날의 과학 기술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시고, 이로 인해 인류의 질적인 삶은 매우 크게 향상되었다.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의 눈부신 발전은 인류의 미래에 큰 희망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인류의 삶과 직결되어 있으며, 더 직접적으로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목표로 발전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교리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과 기술은 그것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할 때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의 존재 의미나 인간 발전의 의미를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곧 과학 기술의 발전이 참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이 그 기준이 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과학 기술은 올바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의 선물」 훈령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적 연구나 그 응용이 그 자체 도덕적으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또 이들 과학적 연구나 응용의 도덕적 기준은 그 과학기술의 효용성이라든지 당대의 사회관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과학 기술은 본질적으로 도덕률의 근본 기준을 무조건 준수하도록 되어있다. 즉, 그들은 무엇보다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또한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에 의한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참되고 온전한 선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인류의 행복에 기여」를 목적으로 내세우는 생명과학이라면 여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대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에 대한 윤리성 확립 내지는 사회적 통제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인간의 재능과 창의력이 이룩해 놓은 업적이 때로는 인간 스스로를 지배하고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를 회복 불가능한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핵에너지가 핵무기가 되어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교만과 통제되지 않는 욕구가 인간 스스로를 철저하게 위협하고 나아가 종말을 자초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시민 의식의 성숙이다. 인간 생명은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며,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어떠한 연구나 실험도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는 의식의 철저한 무장이 요구되는 때이다. 생명과학의 모든 기술이 본래의 목적인 「인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눈이 필요하며, 만일 그것이 인간을 위협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변할 위험이 있다면 그 위험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예방 차원의 입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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