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특수 사목으로 종합 사회 복지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본당에서 사목을 할 때는 1년에 한번 정도는 꼭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곤 하였다. 그러한 교육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이 성령 세미나이다. 성령세미나가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좋은 강사들을 모시고 세미나를 할 수 만 있다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교육이 바로 이 성령세미나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성령세미나가 가지는 장점은 다른 교육이 배타적인 요소를 가지는데 비해 누구나가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 가톨릭이 가지기 힘든 감정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교육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신자들에게 많은 신앙의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신앙에 활력을 불어넣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북평 성당에 있을 때 참여한 성령 세미나는 무어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성령에 대한 체험과 함께 성령세미나의 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떻든 이러한 경험과 생각 때문에 가급적이면 어느 본당에 가든 임기 중에 한번씩은 본당에서 성령 세미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그 후 특수 사목 분야에서 일하는 관계로 그 같은 생각은 실천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성령강림 사건을 루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성령강림 사건을 오순절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오순절은 해방절 다음 50일째의 축제로 보리와 밀을 거두어들인 후 드리는 봄 수확 감사제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면서 계약을 맺은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로 구약의 하느님 백성의 출현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날이다.

때문에 오순절 날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제 성령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는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혹자는 성령강림일을 가시적 교회의 시작으로 보고 교회의 창립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여러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라고 증언하고 있는데 이 뜻은 이제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새롭게 형성될 교회는 모든 인종과 온갖 언어를 넘어서는 범 세계적인 종교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든 성령강림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더불어 구원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이날 처음으로 성령이 활동을 시작하셨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성령은 이미 세상 창조 때부터 활동하고 계셨고, 예수님의 잉태 시에도 이미 역사하고 계셨다. 그리고 오늘 복음인 요한 복음 20, 23절에 보면 『숨을 내 쉬시며 성령을 받아라』 라고 죄의 용서에 대한 권한과 함께 성령을 수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석가들은 이 부분과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강림을 일치시키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성령의 체험에 대한 다양한 전승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때문에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사도들이 체험한 성령 강림사건의 의미는 예수님이 승천 후 은총의 선물을 주셨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제 제자들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던 성령을 재발견하고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즉,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영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새로운 눈뜸」에 대한 극적 표현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강림의 또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씀 드린 성령세미나의 목적도 성령을 새롭게 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받은 성령을 재발견하고 재 체험하고자 하는데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기에 성령 강림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가져야 되는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하면 성령을 재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가장 전통적인 답은 우선 기도일 것이다. 그리고 기도와 더불어 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랑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면 열정적인 사랑에는 「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있는데 하느님에 대한 이같은 사랑이 그분의 영을 체험하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여겨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