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 22주년.
민주와 정의를 위해 죽음으로 맞선 10일간의 항쟁. 학생 시민들 외침, 분노, 피로 물들인 금남로. 시민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참회를 강요받았고 숨을 죽이며 살아왔다.
그러나 정의는 승리하는 법. 20여 년간의 투쟁을 통해 5월 진실은 밝혀졌고 민주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했다.
이러한 광주의 5월 민주의 꽃을 피워내는데는 광주대교구 가톨릭 대학생들의 역할이 컸다.
80년 5월 당시 광주 가톨릭 대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생생한 그해 오월 광주를 사진으로 담아 22년만에 세상에 공개한 이재권(쁘로따시오.46.광주 염주동본당)씨.
당시 조선대학교 기계공학과 4학년이었던 이씨는 『선두에 태극기를 펼쳐잡고 행진한 학생들 대부분이 가톨릭 대학생이었으며 오른쪽 맨 앞 여학생은 당시 조선대 간호전문대 3학년 안경영(로사리아) 학생으로 지금은 성모승천봉헌자회에 입회해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이씨가 세상에 공개한 48점의 사진들은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촬영한 22년전의 기록이 담긴 80년 5월 17일이었다.
5.18을 알리는 사진이나 영상물 대부분이 너무 참혹하고 끔찍해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는데 반해 이씨가 찍은 그날의 모습은 너무나 평온했고 질서 정연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사진을 보면 폭력행사도 없었고 전경구타 장면도 없었어요. 이렇게 조용히 17일 저녁 횃불행진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당시 신군부가 주장했던 「폭도들에 의한 무법천지」라는 말이 조작되었음을 밝혀 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속의 동료.후배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오랫동안 아무도 모르게 필름을 묻어두었다.
22년이 지난 2002년 5월 17일 광주 남도예술회관 전시실에 내놓은 그의 사진은 작품의 영상미나 예술성이 아니라 역사의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그의 정신이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의 집회장소인 「도청앞 분수대」, 「금남로 관광호텔 앞의 태극기 행진」, 「당시 사용한 깃발과 구호」, 「17일 밤의 횃불 행진」 등 그는 필름번호까지 현상해 그대로 나열했다.
『이제 5.18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5.18때 보여준 인권정신, 비폭력정신, 성숙한 시민정신, 평화정신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위대한 문화 유산입니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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