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에 실패한 회사원은 카드빚을 갚으려 5차례나 강도짓을 하고 6천만원 카드빚 독촉에 시달리다 못한 한 가장은 아내와 딸을 죽인 뒤 자살을 기도했다. 20대 2명이 2천만원 때문에 병원장을 살해한 일도 있었고 여성 5명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수원에서의 사건도 카드빚 8백만원이 문제였다. 최근 수원에서 붙잡힌 3인조 연쇄 강도 살인범들도 카드 빚을 갚기 위해 7명의 목숨을 담보로 잡았고 군부대 총기탈취사건, 서울 상봉동 은행 무장강도 사건 역시 카드빚이 동기였다.
카드빚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초기에는 연체자들이 자살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 범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 사회적 공격 행태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우려다. 경제적 문제를 넘어 신용카드 문제는 이제 사회불안 요인으로 대처해야할 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마구잡이 카드 발급
현재 한국사회 안에서 발급된 신용카드 수는 지난해말 9천만장으로 알려졌고 올 5월 1억장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경제활동 인구 1인당 4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10장 이상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23만명을 넘었다는 통계다. 참고로 소득이 한국의 2배인 독일의 경우 평균 카드 소지율은 1.8개다.
신용카드의 범람은 신용사회 구현과 과세 투명성을 높인다는 이유 아래 정부가 신용카드 사용에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신용카드 복권제를 실시하는 등 카드 사용 권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카드사들은 이같은 분위기를 배경으로 신규 회원확보에 열을 올리며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한 데 원인이 있다.
물론 카드회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면서 7개 전업 카드사가 2조 5천900억원, 은행 카드사업부가 2조원등 모두 4조 6천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카드업계가 납부해야할 법인세만도 1조2천여억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라는 신용카드 덕분에 작년 경우 직 간접적으로 6조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은행권 역시 신용카드 수수료 수입등에 힘입어 사상 최대규모인 5조 2천억원의 당기 순익을 기록해서 5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는 소식이다.
신용카드의 그늘
그러나 한국은 그만큼 빚으로 사는 사회가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말 현재 신용카드 회원 4754만명 가운데 신용불량자는 104만1천명으로 은행연합회에 등록된 전체 신용불량자 279만4천명중 37.2%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앞선 7월 62만5천명에서 4개월만에 66.5%나 늘어난 셈이다. 또한 그 수자는 매달 4만명씩 늘어나는 추세다. 신용카드 채권의 연체율도 증가, 지난해 9월말 현재 8.6%를 나타냈는데 이는 은행대출에 비해 여섯배를 웃도는 수치라고 한다.
그런데 신용카드사들로부터 소비자들이 현금서비스나 카드론등을 통해 대출받은 액수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섰다. 혹자는 이 빚이 청산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과 살인이 또 저질러 질것인지 걱정부터 앞선다고 했다.
이러한 빚잔치의 배경에는 카드사들의 잘못된 영업관행이 일차적 지적 사항으로 꼽힌다. 현금서비스의 확장경쟁이 바로 그것. 유럽 미국등 외국에선 신용카드 사용의 80%가 물품구매(신용거래)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돈을 빌려쓰는 현금서비스나 카드론이 압도적이다. 이 현금서비스는 급전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에게 간편한 창구일 수 있지만 그만큼 금리가 비싸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들어 카드빚 100만원을 갚기 위해 다시 카드 빚을 얻어 돌려막을 경우 20년후에 갚아야할 돈은 1억1500만원이 된다. 월 2%인 현금서비스 수수료를 복리로 환산할 경우 3년이면 2배, 10년이면 10배, 20년이면 115배, 30년이면 1247배로 부풀려진다. 연체할 경우 이자는 월20%로 껑충 뛰는 것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7개 전업 신용카드사의 지난해 현금서비스 금액은 267조원으로 전체 카드사용금액의 61.3%를 차지한다. 카드소지자들이 매일 현금지급기에서 7천333억원씩 현금을 인출했다는 계산이다. 현재 1000만원 이상 현금서비스를 이용한 53만명이 잠재적 신용불량자라는 것은 그러한 현금서비스의 폐해를 드러내 주는 한 예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분별없이 300~400만원의 신용카드 매입을 한 채무자가 이를 막으려고 소위 돌려막기식으로 다른 카드를 사용 현금서비스를 이용하고 결국 2000~3000만원의 카드빚을 지게되면서 비이성적인 채무변제에 돌입하게돼 월10~20%의 고리 사채업을 찾았다가 파산하는 시스템이 정착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카드사들은 현금서비스 확대를 진행중이다. 최근 정부가 현금서비스 카드론 업무비중을 2년내에 50% 이내로 줄이도록 했음에도 경품을 내건 카드회원 확보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절제 소비정신 시급
카드발급 기준 강화, 현금서비스의 축소, 소득에 비례한 카드한도액 설정, 신용불량자의 갱생 대책 수립등 신용카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안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에앞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신용카드를 올바로 쓰는 의식의 정착이다. 각 개인의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식의 그릇된 사고와 「앞날은 생각 않고 우선 쓰고 보자」는 식의 물질만능주의 한탕주의 세태에 도덕적 긴장감이 가해져야 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면에서 전반적으로 사회전체의 도덕성 회복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이 시급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최근 발간된 「카드빚 탈출하기」 (태드 크로포드 지음)란 책은 사치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13개의 카드를 돌리며 살던 23세 여성 아이리스가 카드의 실체를 확인하고 빚을 청산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8개월만에 카드빚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점은 「돈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서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촛불을 켜놓고 『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았을 때 나는 당신에게 입을것과 먹을 것을 주었어요. 당신이 아무리 많은 빚을 졌어도 나는 한번도 당신을 버리지 않았어요』 라고 「절규하는」 13장의 카드를 잘라버리는 의식도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우리 신자들은 재물과 절제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34~35항에서는 재물과 절제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재물은 좋은 것이다. 그 궁극적인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개인이나 국가가 재물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주 건설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므로 일정한 절제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재물로 인해 실제로 잘못된다. 재물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위에 하느님 계심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교회헌장 42항에서는 『모든 이는 자기 마음을 바로 다스리도록 정신을 차려야 하며 복음적 청빈 정신에 어긋나는 현세 사물의 사용이나 재산에 대한 집착으로 완전한 사랑의 추구를 가로막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윤리신학자들은 『무엇보다 교회는 그리스도교 정신인 절제의 미덕을 강조, 모범을 보이고 교회의 자선정신을 고취시키는데 힘써야 한다』면서 공의회 문헌등을 통해 재물과 재화에 대한 사회 윤리적 교육이 이루어 질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평신도 교령 7항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사목자 들과 신자들은 현세질서의 그리스도교화라는 입장에서도 잘못된 카드사용으로 인한 병폐에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평신도 교령 7항은 사목자들에게 『창조목적과 세계 이용에 관한 원칙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현세질서가 그리스도안에서 바로 세워지도록 도덕적 영성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평신도는 현세 질서의 개선을 고유 임무로 받아들이고 그 질서 안에서 복음의 빛과 교회 정신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확고하게 바로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교회내 관계자들은 『한 시민단체가 「스톱 카드」캠페인을 벌이고 있듯 교회도 「똑바로」운동 등의 정신을 통해 올바른 신용사회 정착을 위한 의식 개혁 운동을 전개해 가야 할 것』이라면서 더불어 『정부와 사업자들에 대한 구체적 문제해결 촉구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
▲ 교회내 관계자들은 『한 시민단체가 「스톱 카드」캠페인을 벌이고 있듯 교회도 「똑바로」 운동 등의 정신을 통해 올바른 신용사회 정착을 위한 의식 개혁 운동을 전가해 가야 할 것』미라고 말한다.
카드 어떻게 쓸까.
어쩔 수 없이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이 현명할까.
『쓰기 전에 따져라』(Pay As You Go).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 최근 호는 「좋은 씀씀이」와 「나쁜 씀씀이」를 비교한 글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카드 빚을 겁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휴가 갈 때 카드로 비행기와 콘도 예약부터 한다. 그러나 신용카드 빚은 쉽게 갚을 수 없다. 갚을 때쯤 되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야되고 「빚더미 위에 빚이 쌓이기 시작한다」』며 쓰기 전에 반드시 지출내용을 따져볼 것을 충고하고 있다.
금융권 실무자들은 『현금서비스 이자율이 실제 사채금리와도 맞먹을 만큼 심각한 것인데도 많은 이들이 사채는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현금서비스등 카드 빚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우리은행 서울 가톨릭회관 출장소 김혜정과장은 『카드빚이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씀씀이를 줄이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카드가계부를 반드시 작성하고 자신의 한도액 범위를 바르게 산정해서 카드빚 10%줄이기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급전이 필요할 경우 신용카드보다 은행의 소액대출을 활용하고 연체가 발생하면 소득 범위 내에서 최대한 빨리 갚아 나가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