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난민 문제
개인 단체 명예욕에 일회성 우려, 중국정부 난민색출 강화로 “불안”
지난해 6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베이징사무소로 들어가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필리핀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한 장길수군 가족 사건이 있은 뒤 지금껏 중국 내 북한난민들 사이에는 「공포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고 있다.
1999년 1월 일가족 17명이 함께 두만강을 건넌 후 이듬해 3월 길수군 어머니와 외할머니 등 5명이 강제북송된 후 그해 5월 북한을 재탈출함으로써 국제적 관심을 끌어온 길수군 가족의 2년6개월에 걸친 삶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빛」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 길수군 가족의 망명을 애타게 지켜본 관계자에게 이들의 소식은 분명히 「빛」이었지만 중국과 북한 당국의 감시를 피해야 하는 중국 내 북한난민들에게는 그 이상의 「그늘」일 수밖에 없었다. 길수군 가족의 남한행 후 당장 중국 공안의 검문과 북한난민 색출 활동이 강화돼 매우 열악한 은신생활을 하고 있는 10만여명에 이르는 북한난민들은 안전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난민 문제는 이렇게 예견치 못한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확대재생산되어 오고 있다. 1989년 이전까지 모두 607명이던 북한이탈주민은 1990년대에 들어 매년 꾸준히 늘어 100년만의 대홍수라는 물난리가 난 95년을 기점으로 96년 56명, 97년 86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99년 148명, 2000년 312명, 2001년 583명으로 매년 두 배로 늘어나고 있으며 올해는 1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간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일련의 「기획망명」은 그러나 북한난민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일회적이거나 이벤트적 성격으로 인해 오히려 현실적 제약과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획망명」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외국 공관 진입을 통한 이런 접근이 개인으로서도 몹시 위험한 선택일 뿐 아니라 이후 중국 정부의 난민 색출과 검거의 강화로 대다수 난민의 생활이 극도로 불안해진다는데 있다. 나아가 난민이 발생한 원인, 즉 식량난의 해결에서 근본해법을 찾지 않고 현상적인 문제에 집착한다는 비판도 낳고 있다. 특히 이벤트성 사건의 이면에서 인권의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하는 대다수 북한난민을 소외시킨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이번 「기획망명」으로 초래되고 있는 사태를 자신들의 공으로 내세우는 인권운동가들의 모습은 인권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게 한다.
▲ 민간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일련의 「기획망명」은 북한난민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일회적이거나 이벤트적 성격으로 인해 오히려 현실적 제약과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북한이탈주민들이 국내 산업시설을 견학하고 있는 모습.
따라서 초기에는 북한난민 문제를 체제 부적응자들의 일탈현상 정도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이에 따라 북한을 탈출한 이들 가운데 남한으로 오는 이들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대하는 남한 사람들의 시야도 지극히 냉랭했다.
북한난민들의 경우 북한이나 중국이 아닌 제3국행을 원하는 이들도 있지만 북한 내에서의 생활고 때문에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유입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에게 도사리고 있는 예상치 못할 위험이다.
남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불법체류의 멍에를 지고 착취와 학대에 시달려야 한다. 특히 여성들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배고픔 해결과 생존을 위해 많은 경우 한족이나 조선족과 매매혼을 매개로 강제 결혼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법적으로 신분을 보호받지 못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비참한 성의 노리개로 전락해 폭행과 매매춘까지 강요당하며 고통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민간단체들은 북한난민들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접근을 해왔다. 초창기에는 주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 체감지수를 낮추려는 방향으로 도움의 손길이 전개됐다. 교회만 보더라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를 필두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서울대교구 춘천교구 등 각 교구와 단체들은 식료품 지원에 일차적으로 나섰다. 이어서 차차 의약품, 의류 등으로 지원의 방향과 품목이 다양화되더니 2, 3년전부터는 농사용 종자를 비롯, 비료 농기구 등 재생산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이 다변화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북한난민들의 1차 탈출지가 되고 있는 중국에서의 민간단체들의 접근도 다양한 경로로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이런 가운데 북한난민 문제는 단순히 북한이라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등 많은 나라들이 복잡하게 연관된 국제적 문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 사회 적응과정이 통일 후 북한주민의 사회적 통합을 진단할 수 있는 귀중한 선례임에도 한국 정부는 물론 관련단체들도 북한이탈주민들을 통해 북한을 알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적응과정을 제대로 지원하거나 유심히 관찰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점에서 북한난민의 급속한 유입이 예견되고 있는 가운데 남한에 이주한 전체 북한이탈주민의 50%에 달하는 이들이 직업 없는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은 북한주민들과의 사회적 통합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북한난민과 북한이탈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조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 전문가 제언”
“고아.노인문제보다 훨씬 심각
오랫동안 북한난민.이탈주민들을 도와온 한 교회 관계자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기획망명」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수년간 피와 땀으로 구축해온 중국 내 북한난민 지원조직이 와해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자신이 드러나는 것도 중국 내 북한난민들의 은신과 교회의 지원활동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북한난민 문제의 다급함과 절실함을 감안해 그의 요청대로 익명으로 싣기로 한다.
『북한난민 문제를 다루는 것은 교회의 양심이자 복음의 요청입니다』
수시로 중국을 오가며 북한난민 문제에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기울여온 이 관계자는 북한난민을 둘러싼 지원활동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이르게 하신 하느님의 은총임과 아울러 이 은총 가운데 숨어 있는 소명을 깨닫는 것이 올바른 본분임을 강조한다.
북한난민에 대한 사목이 민족과 역사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는 그는 북한난민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원인을 「인격적 체험의 부재」에서 찾는다. 북한난민 문제가 버려진 고아나 노인문제보다 훨씬 절박하고 심각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눈으로 직접 보기 힘들고 현장감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 동포들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며 통일사목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북한난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마저 모르는 듯합니다』
북한난민에 대해 무관심하기까지 한 현실을 개탄하는 그는 그 어떤 외국인이나 외국문화에 대해서보다 북한난민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강조한다. 일련의 「기획망명」에 대해서도 그는 일부 민간단체 인사들의 지나친 명예욕과 활동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강박감 등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현재의 어려움을 낳고 있다고 비판한다. 남한으로 망명한 40명의 북한난민으로 인해 4000여명이 잡혀가는 엄연한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교파의 선교경쟁, 몇몇 조직의 성과주의가 민족의식에 바탕을 둔 연대정신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NGO들이 교파와 조직의 이익을 초월해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할 때 북한난민에 대한 올바른 시각 확보는 물론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는 따끔하면서 아픈 충고를 덧붙인다.
북한이탈주민들과의 만남 속에서 「다름」을 충분히 느끼고 이를 극복하고 초월하려 노력할 때 하느님이 주신 소명을 발견할 것이라는 그의 조언은 우리 가슴에 파문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 난민 지원 실태
중국 특별수사팀 색출 검거 강화 벌금에 실형까지
「장길수군 가족 사건」을 필두로 「기획망명」이 잇따르면서 비밀리에 북한난민들을 지원해온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교회를 비롯한 민간지원단체들은 그동안 북한난민들이 많이 은신해 있는 중국 동북지방과 톈진, 칭다오 등 연해지역 대도시에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비공개리에 북한난민들을 지원해왔다. 이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임시거처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길수 가족 탈출사건에 「길수 가족 구명운동본부」와 「구하자, 북한민중 긴급 네트워크」 등 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가 적극 관여한 것이 드러나면서 민간지원단체의 중국 내 활동이 당장 벽에 부닥치기 시작했다.
북한난민 지원활동을 펴온 교회 내 한 단체 관계자는 『기획망명은 북한난민 문제에 전세계적인 눈길을 모으는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북한난민들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은 게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실제 지난 3월 비정부기구(NGO)단체들이 주도한 「기획망명」으로 북한난민 25명이 주중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한 사건 이후 중국 공안당국은 공안(경찰)과 군인으로 「특별수사팀」을 편성해 지린성을 비롯, 헤이룽장, 랴오닝성 등 동북 3성 일원에서 북한난민을 지원해온 조선족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는 등 북한난민과 지원단체에 대한 강도 높은 색출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국경관리 방해죄를 적용, 북한난민을 도와주거나 숨긴 사람에 대해 베이징 택시 운전사들의 두세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2000∼5000위안부터 미화 1만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벌금까지 부과하고 있어 운신의 폭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나아가 종교활동으로 의심될만한 사안이 적발될 경우 실형까지 선고 하고 있어 교회의 지원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벽에 부닥치고 있다.
따라서 일부 민간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기획망명」은 북한난민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소수의 사람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가짜 여권을 만드는 등 중국 국내법을 어기게 돼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고, 자금과 인력이 많이 들어감으로써 보다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낳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체 재중 북한난민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로 대변될 수 있는 인권유린 문제가 뒤켠으로 밀려나고 있어 뜻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큰 어려움에 봉착한 북한난민 문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는 대안 마련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