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200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근세사의 아픔이 담긴 또 하나의 이름 「북한난민」(제3국에 체류하거나 은신 중인 탈북자)과 「북한이탈주민」(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주 「북한난민」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짚어본다.
■ 북한이탈주민 현황
「북한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자로서 북한을 탈출한 후,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자」
「북한이탈주민」을 법률적으로 정의한 이 표현에는 우리 민족이 세기를 바꿔가면서도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멍에와 아픔이 녹아 있다.
5000만명에 이르는 거대한 집단인 「남한인」 사회 속에서, 북녘땅 2000만명의 0.005%에 달하는 1000명 정도의 「북한인」인 북한이탈주민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는 2000년 12월말 현재 1397명의 북한이탈주민이 들어왔다. 이 중 죽거나 이민간 219명을 제외한 1178명이 남한에 거주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은 1969년 이전까지 485명이던 숫자가 70년대 59명, 80년대 63명에 머물다 90년대 들어 1993년까지 매년 10명 정도 발생했으나 1994년 이후부터는 매년 평균 80∼90명 이상이 남한으로 오고 있다.
국내 유입 숫자의 증가와 함께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은 가족을 동반한 집단입국이다. 1993년까지는 단독입국 형태가 대부분이었는데 반해, 1994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가족동반 입국이 급증하고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나 군인 등의 개인적인 입국이 아닌 해외상사원이나 교사, 외교관 그리고 가족단위의 입국 등으로 탈북 양상 또한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94년 3가족 10명, 95년 4가족 13명, 96년 9가족 27명, 97년 17가족 59명, 98년 12가족 34명, 99년 38가족 91명, 2000년 10월 23일 현재 35가족 97명으로, 1994년 이후 입국한 666명의 50%에 달하는 331명이 가족 형태로 입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먼저 입국한 가족들의 주선으로 제3국에 거주하고 있거나 북한에 남아 있던 가족들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에, 단독입국한 후 국내에서 가족을 이루는 경우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통일부에 의하면 2000년 3월 24일 현재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30대 이하가 82.5%인 941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 이들이 북한에서 종사했던 직업별로 보면 1차 산업 종사자 30.2%, 군인 24.4%, 학생 및 기타 22.8%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1990년 이전까지 7%에 그치던 여성탈북자가 1995년 15%, 1996년 23%, 1997년 34%, 1998년 25%, 1999년 39%, 2000년 8월 31일 현재 40%의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국내 이주 후 75.9%(701명)가 서울 및 경기 일원에 거주하고 있어 주거지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1998년 조사에 따르면 거주 형태면에서 북한이탈주민의 74%가 영구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국민 전체의 83%가 본인 소유나 전세를 살고 있는 것에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생활정도를 예측할 수 있는 수치로 국내 거주 후의 직업을 살펴보면 2000년 3월 24일 현재 회사원이 223명(24.7%) 자영농업이 104명(11.5%) 순이고 놀랍게도 무직이 339명으로 37.5%나 돼 북한이탈주민의 생활안정 문제가 시급함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이같은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접근은 북한에서의 생활 실태와 북한실상을 조사하는 연구 즉, 「인적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접근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 북한이탈주민의 수와 조직이 확대되면서 이들의 자격 및 학력 인정, 직업선택 등 남한사회 적응초기단계에서 겪는 양상과 문제점에 초점을 맞춰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정책」 개발에 비중을 두어왔다.
이런 반면, 입국 이후 사회적응 준비교육을 받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사회에 나가서 실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심리적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북한이탈주민의 실제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북한이탈주민 문제」는 일반화나 객관화가 힘들 뿐 아니라 이들의 사회적응 과정의 일면을 고찰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 북한이탈주민 가정
북한이탈주민이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가족문제가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살아온 환경과 전혀 다른 조건 속에 놓인 이들의 세대간.부부간 갈등, 육아나 자녀교육에서 나타나는 문제 등은 남한인의 그것보다 더욱 집약돼 나타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이 겪는 첫번째 가족문제는 세대간의 긴장 및 갈등 속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권위를 잃는 문제다. 가족동반 입국 후 독립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초.중.고교 및 대학 생활을 하는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사회에 비교적 「과동화」(over-acculturation)되는 반면, 부모세대는 주변적, 또는 표피적으로만 동화됨으로써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 중 노인층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양상이 점점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정착지에서 북한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익숙한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계유지의 걸림돌이 되면서 노인들을 점점 더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층 유입인구가 많지 않아 노인층 북한이탈주민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노령층의 유입과 현 세대가 노령화됨에 따라 노인 북한이탈주민 문제가 사회문제화할 것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북한이탈주민 가정에서 부부문제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아내가 남편보다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속도와 형편이 나을 경우 부부갈등이 어김없이 초래되고 있다. 여성은 청소, 식당일 등 일을 구하기 쉽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에 더 빨리 적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가부장적인 의식이 강한 북한 남편들은 아내로 인해 큰 좌절감을 느끼고 아내에게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갈등이 더욱 심화돼 남편의 가정폭력과 가정불화로 이어져 이혼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북한사회에서 용인되던 가정폭력이 남한사회 내 부부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짐으로써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한 가정의 예를 보면 남편은 실업상태로 매일 집에 있다시피 하면서 주식에 빠져 정착금은 물론 강연을 하거나 부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내의 수입마저 날리는 경우도 있다. 다른 가정은 아내가 사기에 휘말리거나, 무속신앙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이탈주민의 양상은 최근 들어 북한이탈주민의 숫자가 급증하면서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
■ 교회의 접근과 대안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접근과 지원은 보다 전문적인 노하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경찰이 관리해왔기 때문에 사전 지식과 열의 부족 등으로 허술한 관리체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사회복지시설.기관을 운영하며 어느 종교나 단체보다 지역사회 중심의 예방적이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교회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접근에서도 많은 장점을 보여왔다.
생활비 보조, 공동주거지 제공, 생활필수품 제공, 의료지원, 장학금 지원 등 물질적 지원은 물론 더욱 중요성을 띠고 있는 심리.사회적 적응을 위한 지원 등 비물질적 지원에서도 교회는 다양한 노하우를 쌓아왔다. 특히 직업, 주거, 교육 등에서 복합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가정의 경우 교회가 벌이고 있는 남북 주민간의 결연 사업이나 모임, 상설적 모임을 통한 상담, 북한이탈주민 가정 방문 등은 적잖은 효과를 발휘해왔다. 그간 활동에 비춰볼 때 교회 내 각종 단체들의 북한이탈주민 지원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해 이를 공유할 때 적잖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교회가 서비스가 미비한 분야를 보다 적극적으로 찾고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보다 충실하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은 통일 이후 교회의 북한사회 접근을 점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는 물론 민족의 미래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 관계자 제언
『빨리 통일이 돼 북한의 형제들과 희망을 함께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찾아 먼저 씨앗을 뿌리러 왔다는 ㅅ씨, 그는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 북한 탈출 10년만인 지난 96년 남한땅을 밟은 후 올해로 7년째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삶은 여느 북한이탈주민들처럼 고뇌와 좌절, 그리고 극복이라는 말로 점철된 것이었다.
북한이탈주민들 대부분이 자신처럼 남한사회가 안겨준 상처 한 두개쯤은 지니고 살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 상처 속에서 통일의 꽃이 피어나길 기대한다는 말로 자신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
『혼자 잘 살려고 온 게 아닌 한 통일을 대비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야 합니다』
남한사회에 적응을 잘한 경우에 속하는 그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순조롭게 남한에 자리잡을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마련하는 일이 장차 통일국가를 세워나갈 우리의 역량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장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아울러 통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미리 예견해 남북한 주민들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앞서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존감을 상실한 채 최저생활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전락함으로써 일반인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현실에 누구보다 아파한다.
『신분의 특성상 북한이탈주민들은 거주지보호 담당관을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보호, 교육, 직업훈련 등에 있어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제한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쉽습니다』
그 또한 이 어려움을 헤쳐 나왔기에 전문적인 접근을 통한 적절한 개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회복지 활동이 활발한 교회는 이런 면에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접근에서도 장점이 많습니다』
교회가 전국 곳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각종 복지관을 비롯한 다양한 복지시설을 통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예방적이고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때 통일 이후 교회의 북한사회 접근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특히 교회가 벌이고 있는 남북 주민간의 결연 사업이나 상설 모임을 통한 신앙권고, 가정 방문 등에 주목하는 그는 이를 통해 남북 주민간의 문화충격의 강도를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통일은 뜻있는 이들의 이런 모색 속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문제는 남한사회가 통일 이후 북한사회를 무리없이 포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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