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두려움이라는 말은 불안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인데 이 두려움이 일어나는 경우는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위협을 확인할 수 없을 때나 어떤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흔히 일어나는 감정으로 이러한 두려움에 대해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흔한 반응은 회피라는 것이다. 즉, 상황이나 사람을 기피함으로써 두려움을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삶에는 회피할 수 없는 상황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회피는 자칫 인간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가지는 두려움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우리가 가지는 근본 두려움은 남녀간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가슴속 깊이 가지는 두려움은 자기가 썩 훌륭하지도 못하고 무능력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낳게 되고 거절당할까 하는 두려움이 타인에게 다가서는 것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결국 이러한 두려움이 가정에서는 공격적이 되거나 아니면 아내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자들이 가지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신뢰와 인정인데 오늘날 직장과 가정에서는 이러한 남자들의 근본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나 자주 못미더워하고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모습이 이러한 남자들의 두려움을 점점 더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 여자가 가지고 있는 근본 두려움은 나는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여자들은 이러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에게 대화를 해주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배려와 사랑을 주지 않는 상황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러기에 무심한 남자들의 침묵은 여자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더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들은 이런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줌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는데 문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 아니거나 상호 관계적인 사랑이 아니라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오게 되고 여자는 항상 피해의식만 가지고 살아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자가 가지는 이러한 두려움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공감과 이해」 그리고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이 그것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남녀가 가지는 근본 두려움의 차이가 이런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고, 때로는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의 두려움을 더 가중시킨다는 사실은 너무 역설적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가슴 아픈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어떻든 여기서 기억할 것은 인간이 가지는 근본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타인이 보내는 「사랑과 신뢰」라는 점인데, 이러한 사실은 신앙생활에서 인간과 하느님, 그리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라는 사실을 오늘 복음을 통해 묵상해 볼 수 있다.
오늘 복음은 지난주에 이어 계속해서 파견 설교의 일부로서 오늘 복음의 중심단어는 「두려워함」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가장 값없는 참새 한마리와 가장 흔한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살피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에 대한 신뢰」, 그리고 「하느님을 두려워함」이란 말들이 밀접히 연관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사상은 오늘 복음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 주제인 것이다.
「두려워하다」란 말은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낼 때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자세로 종교 자체와 동일시 될 정도로 넓고 깊은 의미를 가진 말이다. 모세가 불타는 가시덤불 앞에서 느낀 감정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보였던 반응도 이러한 느낌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아침에 제자들이 보였던 반응도 이러한 감정인데 이런 감정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낳는 씨앗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은 위험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되던 말씀인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야훼 하느님이 그들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민수 21. 34 신명 3,2?7,18 이사 7,4 등등) 즉, 하느님을 신뢰함으로 두려움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복음의 말씀은 우리가 두려움을 가져야 할 진정한 대상이 누구인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세상의 헛된 두려움에서 벗어남이 제자들의 올바른 자세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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