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몰라요… 살아서도 명리(名利)를 내세우지 않았는데 내 이름을 건 문학관을 짓는다는 게 영 내키질 않아요』
흔적없이 한 사람의 문인으로 살다 떠나겠다는 구상 선생의 집요한 고집 때문에 문학관 건립 일정이 늦어질 만큼 흔쾌한 승낙을 내리지 않았던 구상 선생.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왜관과의 인연 때문에 쉽사리 거절하지 못했다.
『왜관과의 인연은 신앙의 신비가 아닌가 싶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함경도에서 자랐지만 전쟁 후 베네딕도 수도원이 왜관에 자리를 잡으면서 저도 친정과 같은 수도원 곁에서 살기로 맘먹었죠. 또 당시에는 병을 앓고 있어서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생활을 해야했어요. 그때 지금 문학관에 자리한 곳에 땅을 사서 글방을 하나 짓고 의사였던 아내가 의료활동을 할 수 있는 순심병원을 지었어요. 이때가 전쟁 후 영남일보 주필을 맡으면서 가톨릭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할 때였죠.
그 후 74년 서울로 올라왔지만 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 땅을 그대로 두었는데 그곳에 내 이름을 건 문학관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는 게 하느님의 섭리인거 같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만 해요』
시인에게 있어 왜관 관수재는 아내와 자식들과 사랑을 쌓았던 곳이며, 독일인 신부와 함께 북한에서 억류됐던 형신부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낸 곳이기도 하기에 더욱 애틋하다.
지금 서울 아파트 문 앞에도 「관수재」라는 명패를 붙이고 있을 만큼 시인에게는 「관수재」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서려있다. 시인의 집 「관수재」는 「관수세심(觀水洗心)」의 뜻으로 낙동강변이 바라보이는 집에서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닦는다는 자세로 시를 쓰고 삶을 살겠다 다짐하면서 그렇게 명했단다.
『죽기 전에 그 곳에서 살았으면 했었어요. 이젠 건강이 여의치 않아 그것도 어렵지만…. 개관식 때 참석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장익 주교님께서 영상편지라도 준비를 해보라는데 허허…』
그러나 시인의 마음은 이미 관수재 글방에 머물러 있다. 개관식 때 참석여부조차 불투명하지만 그의 문학인생은 한 권의 시집으로 매듭지지 않고 작은 문학공간을 통해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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