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석양이 붉게 물든 바닷가가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석양을 본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긴 하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은 바닷가로 가야하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마지막으로 날도 맑아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해가 지는 풍경을 고대하며 바닷가에 간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는 바람에 아쉽게도 석양을 보지 못했다.
며칠 후 나는 다시 한번 석양을 보러가려고 한다. 그곳은 서해안의 작은 마을, 갈매못 성지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가 보이는 이 마을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장 외지면서도 고요한 곳, 그러나 그곳은 뜻밖에도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 신자들을 처형했던 처형장이었다.
1866년 병인년 대 박해 때 예수님이 돌아가셨던 성 금요일에 이곳 갈매못에서도 500여명의 사람들이 처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말이 그렇지 그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의 참혹함이란 말로 다할 수 없을 듯 하다. 그야말로 바닷물이 피로 물들어 석양보다 더 붉게 물들지 않았을까.
순교한 분들 중에서 모두 다섯분의 성인이 나오셨는데 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성 위앵 민 마르티노 신부, 성 오메트로 오 베드로 신부, 성 황석두 루가 회장, 성 장주기 요셉 회장이 바로 그분들이다.
하지만 이들 성인들 이외에도 이름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신앙이 증거된 곳이니 그곳을 한번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하잘 것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는 힘이 될 만한 곳이다.
성인들과 이름 모를 순교자들의 혼이 서려있고 예술의 혼이 살아있으며 석양이 참으로 아름다운 갈매못 성지. 일부러가 아니더라도 대천 해수욕장을 오가는 길에 잠시 들러도 괜찮을 것이다.
갈매못 성지 가는 길은 서해안 고속도로-광천 IC-21번 보령방면 국도-보령 11km 전에 오천항 방향으로 들어와서 이후 이정표를 보면 된다. 광천 IC에서 성지까지는 20분가량 소요된다. 홈페이지는 www.kalmaemot.pe.kr

▲ 갈매못 성지
내 마음을 빼앗긴 또 다른 곳은 강원도 대화에 있는 대화성당이다. 이 성당은 시골의 가난한 성당이지만 예술적으로 볼 때 세계 그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성당 지을 돈이 없어서 당시 본당 신부였던 황인찬 신부님이 타 성당에 가서 색소폰과 팬플루트를 불면서 모금한 돈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도예가 변승훈씨가 분청사기 도기를 구어서 그것을 다시 깨뜨려 성당벽을 모자이크로 장식했고, 화가 김남용씨가 색유리로 교회 내부에 성스러운 빛을 만들어냈으며, 조각가 한진섭씨가 제대, 십자고상, 감실, 독경대, 십사처, 성수대 등을 제작했다.
이들 세 예술가는 서로의 작품이 예술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건함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했는데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었다. 성당 안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지며 하느님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대화성당은 성당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으며, 예술이 종교와 만났을 때 얼마나 숭고한지를 보여준다. 또한 하느님을 알리는 데 있어서 예술이 얼마나 필요한 도구인지를 보여준다.
일상을 벗어나서 동해로 가는 길에 이곳 대화성당에 잠시 들른다면 예술가의 혼이 배어있는 성전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 8월에는 조각 전시회도 개최한다고 하니 일석이조의 즐거움이다. 대화성당에는 신자들이 피정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있으니 미리 예약을 한다면 하루 이틀 호젓하게 휴가를 보낼 수도 있다.
성당의 주변에는 맑고 아름다운 계곡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라 하겠다. 우선은 대화성당의 열성 팬들이 운영하는 성당 홈페이지를 들러보아도 좋을 것이다(www.artchurch.or.kr).

▲ 강원도 대화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