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을 거듭할수록 신자들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이주노동자 문제는 한편 우리에게 지난 삶을 돌아보고 그리스도인적인 삶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보다 넓어진 새로운 자아와 만나는 길을 제시해주는 대상이 되고 있다. 가톨릭신문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관련기획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오가는 거리에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집 근처 골목에서, 혹은 가게나 음식점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존재가 된 이주(외국인) 노동자. 우리의 일상 안에 부쩍 다가선 이주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는가. 과연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이들에게 다가서고 있는가.
2002년 6월 현재(통계청 자료) 이주노동자 수는 32만명, 이는 15세 이상 65세 미만의 인구 중 취업을 했거나 취업할 의사가 있는 2256만7000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1.42%에 달하는 숫자다. 문제는 이들 이주노동자 가운데 80%가 넘는 27만명이 「불법체류」로 낙인찍힌 이들이라는 점이다. 이 비율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 되어버린 이주노동자가 우리의 일상에 다가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 해외에 진출(투자)한 기업이 현지에서 고용한 인력의 기능향상을 위해 「외국인력 산업기술연수 제도」를 시행하면서부터였다. 이후 93년 「외국인 산업연수제」가 시행됨으로써 본격적인 단순기능인력의 도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처음 「외국인 산업연수제」가 도입됐던 93년만 하더라도 6만7000명에 불과했던 이주노동자는 97년에는 24만5000명, 2001년 말 32만9000여명으로 8년만에 5배로 증가했다. 이들에게는 기술연수 1년에 연수취업 2년 등 총 3년의 합법적 체류가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중 불법체류자 비중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93년 5만5000명이던 불법체류자 수는 97년 14만8000명, 2001년에는 25만5000명으로 전체의 77.4%를 차지하다 올해는 84%(27만명)로 80%대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의 3.2%나 대만의 7.4%, 독일의 6.5%보다 높은 것은 물론 불법체류자가 많다고 알려진 일본(32.7%)보다도 2배 이상 높은 실정이다. 이 수치는 곧 우리나라가 운용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관련제도가 적잖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같은 불법체류자의 급증은 크고 작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인권 문제다.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 단체 등 노동계가 주로 제기해온 「인권 침해」 문제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이주노동자들의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사업장 이동권」을 박탈함으로써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욕설과 폭행, 성추행 등 학대를 자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에도 「예술흥행(E-6)비자」로 입국한 러시아여성들이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우리나라에 도착하자마자 감금된 상태에서 윤락을 강요당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하는 등 이주노동자를 둘러싸고 인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월급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실상의 「노예 노동」 상태에 놓이는 것은 나은 편에 속하기도 한다. 감금하고 때리더라도 월급만 제때 주면 「훌륭한 사장님」이라는 평을 듣는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현실은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 지난 4월 미등록외국인노동자 일제등록거부와 합법화 쟁취결의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협의회 등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혜택을 받아온 사용자단체와 정부 일부 부처에서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고용시장의 혼란 및 국내 노동자들의 취업기회 박탈」 측면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7월 12일 오는 8월부터 외국인 산업연수생 5만명을 추가 도입키로 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노동자회 이재철(안토니오) 사무국장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우리는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못함으로써 제도적으로 불법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일 경우 내국인 노동자와 동등조건을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실정』이라며 『기존의 불법체류자 문제를 먼저 해결해나가는 가운데 「노동허가제」를 축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제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노동계의 주장에서 나아가 법률 및 생활상담, 의료활동 등 자선적 접근과 아울러 「한국어교실」, 노동자교실 등 교육적 측면의 접근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물적 정신적 기반을 확대해나갈 때 참다운 연대성을 확보하고 노동의 건강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 이주 노동자란
이주노동자를 송출·유입하는 국가들간의 국제적 기준에 의하면 흔히 불리는 「외국인노동자」라는 말보다 「이주노동자」라는 표현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외국인」이라는 말은 이미 내국인과 외국인이라는 구분 및 국적에 의한 차이와 차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도 일찌감치 이주노동자 존재에 주목하고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사목적 대안을 모색해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1억5천만명(국제이주기구(IOM) 자료)에 이르는 「이주노동자」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는 크게 「연수생」과 불법취업자로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나눌 수 있다.
▒ 산업기술 연수생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추천으로 인력송출회사를 통해 입국해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연수생을 말한다.
▒ 해외투자 현지법인 연수생
해외투자에 나선 대기업이 현지 노동자들을 국내 공장으로 보내 현장직무교육(OJT) 차원에서 언어와 기능을 향상시키고자 도입하는 연수생이다. 이들은 대개 집단적으로 기숙사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물에서 거주하며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연수비라는 형태로 지급되며, 약 100달러 정도의 저임금이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연수생 이름으로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가운데는 저임금과 착취, 사용자측의 불법행위 등으로 본의 아니게 미등록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이런 이들을 한꺼번에 묶어 「불법체류자」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 배경에는 국제적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법제 미비, 노동환경 등 국내 사정도 한 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 독일 쾰른 이주민여성상담소 주재순씨
도움청할 곳저차 모르는 이들 위해 우리가 다가서야
『자아의식에 반하고 자존감이 훼손당하는 우리 주위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를, 따라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모습입니다』
독일 쾰른에서 이주민여성 상담소 「아기스라(agisra)」를 운영해오고 있는 주재순(49) 박사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지난 6월 28일부터 3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현장을 돌아보며 한국교회와 사회에 애정 어린 충고를 던진다.
자신 또한 지난 1975년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돼 이주노동자로 살아온 경험을 지니고 있는 주박사는 「자신의 주위에 차별로 고통 당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꿈꾸는 하느님 나라는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일상 가장 가까이 있는 차별을 없애는 것이 곧 사회 전체, 나아가 인류를 발전시키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걷게 한 힘이었다.
8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처음 생긴 「아기스라」를 통해 소수민여성들을 위한 일에 본격적으로 나선 주박사는 93년 쾰른에도 「아기스라」가 세워지자 줄곧 상근 상담치료사로 활동해오고 있다. 아기스라에서 그가 하는 상담, 교육, 여러 단체들과의 네트워크 관리 등의 일은 도움이 간절한 이주여성노동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주는 일에 다름 아니다.
『도움을 청할 곳조차 모르는 이들과 사랑을 나누는 길은 그들에게 다가서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런 그에게 고국인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
「소비」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한 모습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과 착취가 「필요악」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교회가 앞장설 때 그간 보이지 않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