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걸어가는 베드로 사도 보다 물에 빠진 베드로 사도가 더 부러운 시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더위도 수확을 앞둔 농작물들에겐 더할 수 없는 축복이라 한다. 무더운 여름,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이 휴가기간이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꿈꾸는 곡식들처럼 사랑의 결실을 준비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오늘 복음은 물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가라앉히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적은 먼저 시현사화 양식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점을 밝히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물 위를 걸으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이 말의 의미는 욥기 9장 8절에 나오는 하느님을 「바다의 물결을 밟으시는 이」라고 표현하는 구절과 병행하여 생각해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면서 겁에 질려하는 제자들의 모습도 인간이 신의 현현을 볼 때 나타내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나다」라는 표현. 아무 의미없는 표현 같지만 성서에서는 하느님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말하는 방식으로 하느님의 자기소개 정식이다.
그러기에 이런 표현들은 먼저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에서 「배」는 「교회」를 그리고 「바다」는 이 「세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렇게 본다면 역풍과 풍랑은 세상을 항해하는 교회가 받는 어려움과 곤경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기적은 우선 교회에 어떤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그 교훈은 교회가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인간들의 노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다』라고 표현하지만 마르코 복음의 병행 구절을 보면 제자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노를 젓느라고 몹시 고생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표현은 바로 교회가 목적지인 구원의 항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인간의 노력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교회가 평화로운 항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이 함께 할 때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근본적인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교회란 예수님이 함께 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과 이성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의 정신이 교회 안에서 마저 주인 자리를 차지함으로 「예수님의 자리」를 변방으로 몰아 놓는 현대 교회의 모습에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베드로 사도의 모습이다.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걷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 듯이 우리도 가끔은 신앙생활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나 놀라운 은총의 체험을 통해 세상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요, 때로는 베드로 사도처럼 물 위를 걷는 특별한 체험과 물에 빠지는 의심의 경험을 되풀이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베드로 사도가 시선을 예수님에게 고정시키고 있는 동안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으나 의심을 품자 그만 물 속에 가라앉았다는 사실로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한다면 우리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일까!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 인간이 물 위를 걷을 수 있는 것은 「어느 특별한 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베드로 사도처럼 「특별한 은총의 순간」에도 결코 주님만을 의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풍파에 시선을 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결국은 다시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을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풍랑이 이는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조건이라면!
물 위를 걷는 순간에도, 물에 빠진 순간에도 베드로 사도가 주님께 요청했다는 사실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주님께 요청하는 것은 물 위를 걷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순간에도 똑같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데 대한 하나의 해답인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당신께 시선을 두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배에 오를 수 있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기적과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우리가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이나, 시련의 순간 진정으로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 분이 누구여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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