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에서 호스피스 제도 법제화 계획을 발표한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호스피스는 당연히 국가가 담당해야할 중요한 복지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암이 1위를 차지하고, 일년에 약 5만 명 정도가 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암 사망자들이 대부분 마지막 시기에 고통스러운 증상을 가지게 되나 그 중에서 증상을 조절하고 편안한 가운데 죽음을 맞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반면 최근 한국의 경제수준 향상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만성질환이 증가되고 말기환자도 상당히 늘었다. 또 시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고취되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 증가로 말기환자들의 고통을 제거하고 편안한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요구가 높다.
그러나 현행 의료 수가 체계 내에서의 의학은 아직 그 요구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국민들과 의료계 사이에 괴리와 갈등이 야기될 소지가 많아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그 동안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병원들은 아무도 관심갖지 않은 때부터 말기환자들의 돌봄에 솔선수범하여 호스피스 완화의료 발전을 선도하였고 전국적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 그 동안 상당한 업적과 경험을 축적해 왔으며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병원들은 물론 전국의 가톨릭계 병원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면서 말기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아 왔다.
또 최근 서울대교구의 몇몇 본당에서는 가톨릭 중앙의료원 산하 병원들과 협력하여 가정에 있는 말기 환자들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점차 그 활동을 확대하려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호스피스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해 있는 형편이다.
의학은 그 발생 초기부터 인간을 돕는 것에 목표를 두어 왔고 의학이 현재와 같이 고도로 발달하기 전 까지는 질병의 치유 면에서는 미흡하였으나 그런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별로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간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현대의학은 인간의 몸으로부터 질병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의 생명을 구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에 목표를 두게 되었고 따라서 질병의 치유나 수명 연장의 측면에서는 의학의 공헌이 상당히 증진되었다.
그러나 인체를 미세한 분자구조 속까지 들여다봄으로 해서 인간을 신비의 대상에서 냉철한 생물학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바꾸어 보게 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학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부분적으로 훼손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구나 현대의학이 환자의 질환이 치유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증상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교육하지 않았고, 또 생물학적인 관점에 초점을 둔 의학의 양 또한 방대하여 이를 교육하는 중에 인간 자체의 가치나 삶의 의미, 죽음과 영혼 등과 관련된 철학이나 신학 등의 분야를 교육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의사들 자신이 죽음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쉽지 않아 환자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와 관련된 문제로 괴로워하는 환자나 그 가족들을 돕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호스피스.완화의학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되게 되었고 이의 발전은 시대적 요구로 인식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호스피스?완화의학이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며, 의료보험에서 수가를 책정하고 완화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의 배양은 물론 의료 전달체계에서 호스피스.완화의학이 확산되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돌보아 왔으며 그러한 일에 묵묵히 앞장서 온 교회의 도움이 어느 때 보다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홍영선 교수는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가톨릭암센터 소장,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알기 쉬운 호스피스 완화의학」(1996) 「내가 암이라구요?」(공저, 2000) 등이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