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들은 불공정한 SOFA와 그것이 낳는 결과가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존감과 주권에 상처를 입히고, 나아가 분단된 이 땅의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는 한국인들이 주한미군의 존재 목적에 대해 의문을 지니고 있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2001년 4월. 미 국무성에 보낸 2차 서한 중)
한국천주교회는 주교회의 차원에서 이미 지난 2000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주교회의를 통해 미 국무성에 소파(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개정을 촉구하는 문건을 보낸 바 있다. 당시 주교회의는 이 문건에서 『SOFA는 한국과 미국간의 오랜 갈등과 마찰의 원인이 되어왔다』며 독소 조항들이 전혀 개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올바른 개정을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을 향한, 그리고 믿는 이들의 양심을 향한 물음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물음 1: 얼마나 외쳐야 하나
6월 13일 오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생일잔치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열네살의 두 여중생, 짙어 가는 여름과 함께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두 소녀의 재잘거림은 그들과 아무 상관도 없던 이국 군인들에 의해 영원히 그치고 말았다.
미군전차에 깔려 피어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한 고 신효순(14), 심미선 학생의 장례가 치러진 6월 15일, 그들이 다니던 경기도 광적면 조양중학교에서 열린 노제에서 누구보다 큰 소리로 울부짖은 이들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두 소녀와 같은 반 친구였던 허유림양이 조사를 읽어나가자 학교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통곡소리와 함께 눈물바다로 변했다.
『예전부터 너희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제야 편지를 쓰는 게 미안하고 안타깝다. 교실 한쪽에 있는 너의 빈 책상, 함께 떠들던 창문가를 보면 너희가 우리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고 금방이라도 교실문을 열고 들어와서 활짝 웃을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저려온다.
아직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우리들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무섭고 두려운 말일 뿐인데…. 훌륭하고 멋진 안무가, 화가가 될 거라던 네 푸른 꿈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우리들의 마음을 찌르고 울리고 있단다…대체 무엇이 너희를 우리 곁에서 떠나게 만들었는지,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는지 원망스럽기만 하다…어제였던 열네번째 효순이 생일 진심으로 축하하고,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곁으로 올 수 있도록 두손 모아 기도할께』
#물음 2 : 서로 다른 하느님?
폭우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8월 7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인접한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는 굵은 빗발을 뚫고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다.
「미군장갑차 희생 여중생 사건 올바른 해결을 위한 천주교대책위원회」소속 회원 100여명이 함께 한 시국미사에서는 『당신들이 믿는 하느님과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다른가』라는 애절한 울림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
모든 달러화의 뒷면에 들어 있는 이 문구가 지닌 미국의 이중성이 낱낱이 고발되는 가운데 열린 미사에서 참가자들은 열넷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삶의 흔적을 지워야 했던 두 소녀의 아픔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거짓 정의, 평화와 맞서 싸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자신이 관할하는 가까운 지역에서 두 여중생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야 했던 의정부 녹양동본당 이철학 신부는 이날 미사에서 『두 아이의 두개골과 심장이 터져 나갈 때야 우리 시대 신앙인이 아파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을 알게됐다』며 부끄러운 심정을 고백하기도 했다.
두 여중생의 영정 앞에 헌화하는 이들에게 끝없이 내리는 비는 마치 하늘에서 이들을 내려보는 어린 영혼의 눈물인 듯 아프기까지 했다.
#물음 3 : 「공무 중」은 면죄부?
8월 10일 오후4시, 「주한미군규탄! 시민행동의 날」행사가 열린 경기도 의정부역 광장은 「공무 중」이었다는 이유로 지난 7일 1차적 형사재판 관할권 포기를 거부한 주한미군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이날 빗속에서 친구들과 집회에 참가한 의정부 민락중학교 이경진(중3)양은 『정의가 올바로 서려면 억울한 사람이 없어져야 할 것』이라며『아무리 우리나라를 위해 왔다지만 잘못한 것은 뉘우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외침에도 미군은 「공무 중」 사고에 대해 미군 당국이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다 최근 1957년 일본에서 미군이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드러나자 미군은 다시 이 사건이 SOFA 협의 전에 일어난 범죄행위라 한국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일본 사례를 공무 중 사고라며 1차적 재판권을 주장하다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이미 1953년 발효된 SOFA 협정에 따라 아이젠하워 당시 미 대통령의 확인 아래 재판권을 포기하고 미 연방대법원도 재판권 포기는 적법하다고 인정한 것으로 밝혀져 미군은 자국민을 위해서는 거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여중생 사건이 계속 확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군의 무성의와 비협조에 있다. 현행 소파 규정상 살인이나 강간이 아니면 미군 피의자를 구금 수사할 수 없어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만 해도 수십건에 이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만 적용되고 있는「미군의 위신에 합당하지 않으면 재판을 거부할 수 있다」거나 「미국 정부대표가 참여하지 않을 경우 피의자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내용의 「호의적 재판권포기조항」은 미군에게는 특혜일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만으로 사법 주권에 대한 유린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전시도 아니고 평시에 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가 우리나라처럼 자주 일어나는 곳은 전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특히 반세기가 넘도록 외국주둔군에 의해 이뤄진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재판권 포기를 요구한 전례가 한차례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지닌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미군과 마주치면 아예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나름의 지혜마저 터득하며 고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은 우리 무관심의 또다른 단면이다.
『친구를 위해 나오는데 이유가 있나요』
집회 현장에서 만난 한 소녀의 말은 이제 숱한 물음을 접어두고 올바른 해답을 찾아 나서야 할 때임을 들려주고 있었다.
▲ 8월 7일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 공원에서 봉헌한 시국미사 후 참가자들이 대형 묵주알을 들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위는 8월 10일 경기도 의정부역 광장에서 열린 '주한미군규탄! 시민행동의 날' 행사 중 SOFA 개정촉구 시위 모습
■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상임대표 문정현 신부
“용서하기 위해 정의가 바로서야”
▲ 문정현 신부
웬만한 시국관련 집회에는 얼굴이 빠지지 않은 전주교구 문정현 신부(작은 자매의 집 원장). 『건강을 생각해 이제 좀 쉬라』는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문신부는 근래 들어 발걸음을 해야 할 곳이 더 많아졌다.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상임대표로, 최근에는 「미군장갑차 희생 여중생 사건 올바른 해결을 위한 천주교대책위원회」공동대표로 사흘이 멀다하고 열리는 집회 현장을 꼬박꼬박 찾고 있기 때문이다.
『선의를 가지고 하느님 일에 나선다면 간혹 실수를 하더라도 돌이킬 수 있지만, 십자가가 주어졌는데도 망설이다 아무 일도 못한다면 하느님의 정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까요』
투명하게 하느님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 보일 때 자신이 할 일이 보일 것이라는 문신부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한데도 조용하기만 교회에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미군 부대를 미국땅쯤으로만 알고 지내오던 이들의 의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우리가 바뀌면 상황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주님의 정의를 잣대 삼아 한걸음한걸음 나아가야지요』
그는 빵을 나눠 먹는 순간에서야 눈이 열려 부활한 예수를 알아본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보잘것없고 가난한 이들과 나눌 때 자신 안에 살아계신 예수를 만날 수 있고, 사랑을 받는 이웃도 우리를 보고 예수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남의 땅에 와 저지르는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고 살아가는 미군들에게 한국이 새로운 세례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참 평화의 두 기둥은 정의와 용서하는 사랑」이라는 가르침을 강조하는 문신부는 용서와 화해가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정의가 올바로 서야됨을 역설한다.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로서 서로 사랑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일이 진정한 사랑의 실현입니다』
사랑이 바탕이 된 것이기에 문신부의 발걸음은 화해와 평화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