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란 책에 보면, 어린 왕자가 여섯번째 방문한 별에서 지리학자와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지리를 연구하는 학자는 많은 별들의 지리에 대해서는 방대한 자료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별의 바다와 산 그리고 강과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탐험가처럼 강과 산 등을 찾아다닐 시간이 없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또 이 지리학자는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산이 몇 개 있는지 등 사물에 대한 관심이지 장미 꽃 한 송이(생떽쥐뻬리의 부인을 상징)와 같은 살아 있는 무엇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경험 없는 지식, 감정없는 현대 지식의 허상을 꼬집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오늘 복음은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과 베드로 사도를 기초 삼아 교회를 창립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하늘나라의 열쇠와 맺고 푸는 권능을 베드로 사도에게 주는 내용을 전해 준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 복음을 보면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질문에 특별히 눈길이 간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란 질문에 대해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라는 대답을 들은 후에 나오는 질문이다.
우선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서운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3년 동안 많은 기적과 말씀으로 가르쳤고 함께 생활했는데 아직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느냐 하는 마음일 것이다.
제자들의 대답은 「어떤 사람들은」 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말을 잘 음미해보면 이 말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들」은 다름 아닌 「제자들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제자들의 말은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여론을 들려주는 동시에 제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예수님에 대한 생각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말인 것이다. 때문에 이 질문은 너희들마저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는 제자들에 대한 약간의 서운함과 더불어 성숙하지 못한 신앙을 가지고 자신의 뜻을 교묘히 여론으로 조작하는 제자들에 대한 일종의 질책의 뜻도 포함되어 있는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단순히 예수님의 이러한 실망과 질책의 뜻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대답에 대해 「옳다」 「그르다」 라고 판단을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을 하는 이유는 아마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 즉, 신앙대상과 신앙인의 관계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 우리는 상황은 다르지만 많은 경우 오늘 복음과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나, 교리서를 통해, 그리고 특별히 필자와 같은 사제나 수도자들은 신학도서를 통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느냐?」하는 질문에 대한 많은 대답을 듣고 배우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접하게 되면 대개 제자들과 같이 대답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예수님을 이야기한다고.
바로 예수님의 질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이론적이고 지식적인 대답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훌륭한 교리와 이론적으로 정립된 내용을 가지고 예수님께 대해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사람의 이야기」로 머무는 한 그것은 마치 어린 왕자의 지리학자처럼 체험이 없는 지식으로 신앙과 삶에는 큰 쓸모가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즉, 신앙의 응답은 나의 체험과 결단에서 나온 「나의 대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말씀은 엄숙히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복음 후반부에는 베드로 사도에게 위대한 3가지 약속을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이유를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하더라도 100%로 틀린 해석만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대답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초라한 신앙을 반성해 본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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