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이카타리나(50.경기도 하남시)씨는 얼마 전 남편을 잃었다. 자신의 투석비용 마련을 위해 아파트 경비 일을 하던 남편이 지병인 당뇨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남편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 이씨 병원비 때문에 당뇨병 치료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그간 병원 혈액투석실의 환자도 많이 바뀌었다. 운이 좋아 신장이식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환자도 있었지만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다.
이씨는 이제 이식수술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3년 전 혈액형이 일치하는 뇌사자를 만나 신장이식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조직검사 결과가 맞지 않아 이식받는데 실패했다. 투석비용 때문에 가산도 거의 탕진한 상태고 가끔씩 도움을 주던 아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신장 제공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씨는 이제 수술을 할 여력이 없다. 그저 생명을 근근히 이어주는 혈액투석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수술비가 있어도 수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과 수술비와 진료비조차 지불할 능력이 없어 이식수술 자체를 포기한 채 절망적인 삶을 보내는 이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KONOS 출범 이후
2000년 2월 9일부터 시행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법 제정 이전 장기이식으로 많은 논란이 일었던 뇌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장기이식을 활성화하여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제정됐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이후 장기기증은 1/3로 줄어들었다. 뇌사자 장기기증도 1999년 162명에서 법이 시행된 후인 2000년 64명, 2001년 52명, 올 상반기에는 17명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장기이식 대기자는 2000년 2084명이던 것이 올 4월에는 9334명으로 5배 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은 장기기증제도의 국가관리방식 때문이다.
장기 불법매매 근절을 위해 정부가 직접 관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제정된 장기이식법은 절차가 까다롭고 규제사항이 많다. 병원과 환자간 직접 연결이 가능했던 이전 장기이식 절차에 정부가 관여함에 따라 「병원→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이식환자」로 한 단계가 추가됐다.
또한 KONOS는 유족 동의절차, 뇌사판정위원회 판결 등에 시일을 낭비함으로써 시간이 최우선이 돼야 할 장기이식 절차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KONOS에서 일괄적으로 장기를 제공받아 대기순서에 따라 전국 병원에 배분을 해 주기 때문이다.
뇌사자가 있어도 장기이식을 권유하는 병원은 거의 찾을 수 없다. KONOS에 일일이 보고하는 절차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장기이식이 성사되더라도 어느 병원 환자에게 이식될 지를 결정하는 권리는 KONOS에 있다.
관리하고 있는 이식대기 환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 병원이 적극적으로 장기 공여자를 찾을 지 의문이다.
KONOS에서는 또 이식 대상자를 직접 선정하도록 명문화함으로써 장기 기증자와 유족이 기증 의료기관 및 이식대상자를 결정할 권리를 무시했다.
기증 활성화의 걸림돌
관계자들은 장기기증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또 다른 원인으로 정부와 시민단체?의료계가 밀접히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단순히 장기이식법 때문에 장기기증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관련 기관 간 이해와 협조가 부족해 장기기증운동의 발전과 홍보가 늦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김명희 과장은 『지난 1989년부터 꾸준히 진행된 장기기증운동은 교회 내 장기기증 문화 확산에 일조했다』고 평가하면서도 『하지만 병원과 시민단체, 정부의 장기기증에 대한 시각이 일치되지 않는 시점에서 장기기증운동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전 국민적인 장기기증 운동 참여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장기이식법을 제정한 정부와 소수에 불과하긴 하지만 장기기증을 돈벌이에 국한시키려는 시민단체, 그리고 장기기증 횟수를 병원의 명예와 수익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료계의 관행 등이 장기기증 활성화의 걸림돌로 남아있다.
환자만 희생양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다. 서울 시내 모 병원의 경우 간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던 환자 10명중 4명이 올 한해 동안 이식수술을 기다리다가 사망했다. 다른 병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혈액투석이나 복막투석 등 인위적인 생명연장이 가능한 신장이식 대기자의 경우도 합병증과 값비싼 투석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강동성심병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현숙자(소화데레사?둔촌동본당)씨는 『장기이식법 제정 초기 정부는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뛰어드는 듯 했지만 시행 2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홍보활동이 전무한 상황』이라면서 『환자들은 정부 정책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희생양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또한 『이식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만 든다』고 덧붙였다.
장기기증 활성화 위해
1998년 뇌사자의 장기이식 법안 통과와 교회 내 장기기증운동의 활성화, 2000년 장기이식법 제정 등으로 국내 장기기증운동은 모름지기 전국민이 동참해 생명을 나누는 운동으로 자리 매김 하는 듯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기기증을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 환자는 늘어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장기기증 가족 동의 절차 완화, 각막의 경우 장기이식의료기관에서 이식대상자 선정, 뇌사판정위원 수 축소 등을 내용으로 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표하고 내년 2월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기이식법의 소폭 개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민단체와 병원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증문화」 자체에 대한 일반인들의 수용여부이다.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법 개정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간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전무한 상황에서 정부 장기이식법과 시민단체의 집단 이기주의, 의료계의 수익 우선주의 등은 장기기증운동을 활성화하고 꼭 필요한 장기이식 대기 환자를 찾아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인 사랑을 찾는 데 실패했다.
KONOS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79년부터 2000년까지 21년 동안 장기를 남에게 이식해준 가톨릭 신자는 60명 뿐이다. 한해 3명 꼴이다.
교회 내에서 장기기증운동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등이 참여해 매년 1000여명 이상이 장기기증 서약을 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단순히 상징적인 운동으로만 남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선다.
■ 한마음한몸 장기기증운동본부 김명희 부장
“기증도 이식도 공동체의식으로 모두 함께 나눌 일”
『장기기증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그 신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2천년 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신자의 역할일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김명희 부장은 가톨릭신자가 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해 장기기증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기이식을 받아야하는 환자는 나도 될 수 있고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뇌사자도 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누구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1000여명 이상의 신자들이 서약, 총 1만6000여명이 장기기증 서약을 마친 가톨릭 교회의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밝힌 김부장은 『하지만 아직까지도 교회 내에는 장기이식과 기증은 나와는 전혀 상관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김부장은 또한 『장기이식법 시행 이후 장기기증자가 줄어든 것은 단순히 법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정부, 민간단체 그리고 병원이 장기이식을 받아야 하는 환자와 기증자를 먼저 생각하고 시스템 자체를 환자 위주로 바꾸는 노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환자들만 볼 것이 아니라, 수술비를 지불할 능력조차 없이 집에서 생명을 잃어가는 환자들을 교회가 먼저 알고 찾아 나서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김부장은 말했다.
김부장은 『가톨릭교회는 그동안 치유자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많은 의료기관을 운영해 왔고 그로 인해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올 수 있었다』면서 『장기기증 서약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국민의 가슴에 생명 나눔의 「기증 문화」를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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