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최근 광복 이후부터 70년대까지 한국 문화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옛 국립극장을 매입, 200억원을 들여 2005년 10월 재개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국내 공연예술장의 상징인 이 곳은 김자경씨가 1948년 최초의 오페라 「춘희」를 공연했고 가수 김정구씨, 배우 김희갑씨 등이 노래와 연극 공연으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오기도 한 곳이다. 가수 현인이 처음으로 「신라의 달밤」을 불렀고 가수 윤복희도 7살 어린 나이에 이곳에서 데뷔했다.
명동의 문화 복원 운동에 불씨를 지피는 움직임은 이미 명동성당에서부터 시작됐다. 문화관이 총공사비 50억원을 들여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첨단 시설의 공연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명동성당을 설계, 건축한 프랑스 선교사 꼬스트 신부의 이름을 따 지은 꼬스트홀은 월드컵 기간인 6월 한달 내내 다양한 콘서트를 공연함으로써 문화의 거리로서 명동의 옛 영광을 미리 보여주었다.
# 한국교회의 중심터
광복 이후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명동은 한국 천주교회와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1784년 겨울 현재의 중구 명동 1가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는 첫 공식 신앙 집회인 「취회(聚會)」를 열었다. 이후 잠시 잊혀졌던 명례방은 100여년 전 1898년 5월29일 언덕 위에 세워진 명동성당을 통해 다시금 한국 천주교회의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
명례방, 즉 오늘날 하루 유동인구 200만명을 헤아리는 서울의 한 복판 명동은 그렇게 교회와 세상을 잇는 접점이 됐다. 그리고 명동,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통해 「민족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90년대를 넘어 새 천년기를 가는 명동성당은 이제 문화의 광장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 문화와 예술의 거리로
명동은 조선초 한성부의 행정구역 설정시 남부 명례방의 「명(明)」자를 딴 것으로 원래 「명례방」, 또는 「명례방골」이라 불리웠다.
그 문화적 향취는 70년대 문화 예술의 메카로 불리울 정도로 드높았다. 지금이야 패션 거리, 쇼핑 천국 등으로 불리우지만 60년대까지 문인들의 집합처였고 70년대에는 이른바 통키타 시대를 풍미하며 문화예술인들의 거리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점차 문화의 향기를 잃어가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80년대 초 상인들을 중심으로 명동의 낭만을 살리자는 복원 운동이 시작됐고 93년부터는 구 국립극장을 복원하려는 운동이 전개돼 문화관광부가 2005년 재개관을 확정하기에 이르렀다. 명동성당측은 꼬스트홀과 소강당, 명례방 등 부대 문화시설들을 활용한 각종 공연들을 수시로 마련하고 있다. 가톨릭회관 1층에 마련된 평화화랑에서는 매일 수준 높은 전시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명동거리는 문화와 예술의 향연이 연중 펼쳐지는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 명동본당 주임 백남용 신부
”명동 문화의 변화 중심에 명동성당이…”
▲ 백남용 신부
지난 1998년 명동성당 100주년을 맞아 열린 심포지엄은 민족사 안에서 명동성당의 역할에 대해서 논의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민주화시대 정의와 인권 수호의 마당이었던 명동성당이 이제 「문화의 광장」으로서 새로운 변모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 주임 백남용 신부는 교구의 성음악감독이라는 위치에 걸맞게 높은 문화적 식견을 바탕으로 명동성당의 문화적 역할과 기능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첨단 설비에 486석 규모인 「꼬스트홀」 외에 144석의 2층 소성당, 100석 규모의 「명례방」 등도 훌륭한 공연 무대로 활용될 수 있다. 꼬스트홀에서는 지난 6월 개관 축하공연을 한데 이어 이번 달 16일부터 24일까지 매일 저녁 청소년음악회를 열었다.
잇달아 개최된 콘서트들이 교회 안에서는 물론 바깥의 문화계에서도 호평을 받으면서 이미 9월에 5개, 10월 10개, 11월에도 5개의 공연 일정이 꽉 잡혀 있다. 올 겨울방학에는 마사회로부터 청소년 교육지원비 3000만원을 받아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된 농어촌 10여개 본당의 중고생들을 서울로 초청해 공연 관람과 함께 관광도 시켜 줄 계획이다.
명동성당은 이처럼 아낌없는 공연장 개설과 알찬 문화사업으로 명동이 문화의 거리로 거듭 나는데 있어서 그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목회 안에 문화분과와 문화전문위원을 두고 끊임없이 문화 행사들을 기획, 지원하고 있다.
구 국립극장이 다시 문을 열게 됨에 따라 명동성당은 이제 국립극장과 함께 향취 높은 명동의 문화 부흥을 이끌어가는 두 축으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