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 「클릭」 한번이면 초고속통신망을 타고서 「21세기형 편지」 e-메일이 휙 날아간다. 몇 초쯤 걸릴까. 전자편지가 이내 컴퓨터 앞에 도착하고 만다.
편하고 빠른 세상이 좋긴 한데 그놈의 전자편지 때문에 그리움과 정이 담긴 편지를 받아본 지가 오래다. 힘겨운 비탈길도 즐거운 웃음으로 올라서며 기쁜 소식을 전해줬던 우편배달부. 「사랑의 배달부」가 전해준 정(情)이 까마득히 잊혀져간다. 「빠르게 빠르게」를 외쳐대는 오늘의 초고속시대에는….
그러나 판자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달동네, 좁다란 골목길을 찾을 때에는 여전히 묵직한 우편가방을 둘러메고 빠른 걸음으로 주소지를 찾는 서울 마포우체국 집배원 황병길(바오로?47)씨. 디지털세상이라 모든 게 변했다지만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 우편배달부」다.
26년째 편지 한 통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집배원 황씨. 세월이 흐르면서 배달수단인 자전거가 오토바이로 바뀌었고, 언젠가부터 정이 담긴 편지 대신 광고홍보물만 가득하다. 오랜 세월 큰 보람을 느끼며 해온 일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건 점점 더 삭막해져가는 세정 때문이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에도, 눈비가 쏟아지는 매서운 날씨에도 그들을 반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편지를 받는 이들이 있었기에 힘겨운 일이지만 힘든 줄 몰랐다. 웃음과 함께 건네는 냉수 한잔이면 더위도 잊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우편물이 쓰레기가 되고 말아 애써 전해준 그들의 마음마저 천덕꾸러기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야속하기만 하다. 황씨가 요즘 만나는 건 냉소적인 표정과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 사람들, 격세지감만 느낀다.
동료 집배원 5000여명이 IMF의 희생양이 되는 바람에 그들에게 남은 건 동료를 떠나보낸 상처와 막대한 업무량이다.
하루평균 15∼16시간의 노동. 아침 7시에 시작되는 황씨의 일과는 여느 집배원과 마찬가지로 우편물 분류하고, 배달하고 잔무를 처리하다보면 어느새 밤 11시를 넘긴다. 「보람」 보다 「일」에 대한 부담감만 크다. 죽을 듯 사력을 다해보지만 어쩌다 늦게 들어오는 우편물과 집배원들에 대한 불만이 민원으로 들어올 때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야속한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과로한 업무로 쓰러져가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서로의 고충을 나눠 짊어지기 위해 기도로 마음을 추스린다는 황씨. 그는 태풍이 몰아치는 오늘도 묵직한 가방을 오토바이에 싣고 나선다. 「정(精)」을 배달하는 사랑의 전령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여전히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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