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잘못을 지적 받기도 하고 지적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잘못을 지적하는 행동은 대체로 긍정적인 결과를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요령이 필요한데 공통적인 사항은 이렇다 한다.
먼저 잘못을 지적할 때는 가급적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적하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지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된 사실」보다는 「그 사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전하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가 된다고 한다. 잘못의 지적은 「애정과 사랑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어야지 자신의 만족이나 타인을 비하하기 위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비판에 앞서 상대방이 가지는 장점을 일깨워주고 상대방을 칭찬해 줄 수 있을 때 잘못을 지적받는 사람은 아프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적하는 사람의 말의 내용이 아니라 지적하는 태도에 더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면 부부 사이에서는 사소한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너무 사소한 일에 대해 사랑의 이름으로 너무 자주 충고하는 것은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만이 노골적으로 비판한다』라는 격언처럼, 지혜로운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사소한 실수는 「그(녀)가 스스로 알도록 조금은 미루어두는 지혜」 나 아니면 「그(녀)가 느낄 수 있도록 눈감아 주는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배우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감싸주는 것을 느낄 때, 부부는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할 여유를 가지게 되고 서로에게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러한 관계에서 불변의 진리는 잘못을 했을 때, 잘못한 당사자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면 아마 다른 모든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지녀야할 몸가짐을 밝혀 놓은 부분으로 잘못한 형제의 죄를 바로잡아야 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규범을 전해준다.
여기서는 먼저 형제적 충고를 할 때는 단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야 한다고 한다. 아마 이 말씀은 충고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인 것이다. 즉 형제적 충고는 「그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목적이 되어야지 「죄를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리라.
그리고 두번째는 개인적인 충고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충고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재판 때 복수증인을 채택하는데서 영향을 받은 표현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형제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객관적인 증거나 사실을 가지고 지적해야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즉 섣부른 판단이나 독단적이고 주관적인 죄의 판단을 금지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그래도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한다. 여기서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이나 세리들을 백안시하고 관계를 갖지 않은 것을 참조하면 되는데 이 표현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런 사람들과는 절교하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내 쫓으라는 표현이다.
물론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사랑에 반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 표현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절교나 파문이 아니라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이 말이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즉 이 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의미 뿐 아니라 그리스도 공동체는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공동체이기에 잘못했을 때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도 함께 강조하는 표현인 것이다.
지난 8월 8일 성 도미니코 축일에 주교님이 수녀님들에게 하신 『잘못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 뜻이 다를 때 신자들의 말을 들을 수 있고, 화가 날 때 화를 참을 수 있는 수도자』가 되라는 말씀으로 결론을 대신하고 싶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