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5년 동안은 명동성당에서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특히 수녀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영적 지도를 하는 것을 나의 일로 삼았다.
당시만 해도 한달에 200명에서 300명 정도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와서 고해성사를 보곤 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어떤 일이든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들에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은 나의 끊임없는 소명이었다.
신앙생활에서 고해성사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주교님들과 많은 신부님들, 수도자들은 한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성사를 보는 것을 매우 기뻐했다. 더구나 수녀님들은 대부분 한달에 한 번씩 빠짐없이 성사를 봤다.
96년 그야말로 정식으로 은퇴하고 압구정동 일우(一隅)에서 생활하면서부터는 매월 2번씩 명동 주교관과 인근의 강남성모병원 수녀님들에게 고해성사를 주러 외출을 한다. 물론 집으로도 수도자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러 찾아오곤 한다.
그때 나는 성사를 본 지 한달 됐다는 수녀님들에게는 별 야단을 치지 않지만 두달, 석달, 넉달 등 고해성사를 보지 않은 수도자들에게는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 그래서 수녀님들은 고해성사를 보러 올 때 『야단 맞으러 가자』고 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약화되고 특히 수도생활에서 「감미로움」이 사라지고 모든 일을 의욕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나 자신도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5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달에 한번씩은 고해성사를 하면서 사제생활의 힘을 얻었다.
신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신학생들은 매주 한번씩 금요일마다 고해성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4시쯤 되면 나는 학교 구석구석을 쫓아다니면서 신학생들을 찾아내 성사 보러가라고 쫓곤 했다.
94년에 나는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넘어온 고비는 모두 다섯 차례에 달한다. 일제시대때 학도병으로 끌려가기도 했고 신학생 시절 불량배들에게 죽도록 맞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에는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되기 직전에 풀려났었다. 94년에는 감기에 걸려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됐고 결국 김수환 추기경을 불러 유언까지 남길 정도였으나 간신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항상 몸이 약했었기 때문에 건강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나는 후배 사제들에게도 자기의 건강은 자기가 철저하게 지켜나가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이미 앞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건강은 사제 생활을 지켜주는 가장 첫 번째 덕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드시 매일매일 꾸준한 운동을 해야 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푹 쉬어 원기를 되찾아야 한다. 물론 쉬는 날에도 아침미사를 궐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쉬면서 건강을 지켜나가야 한다.
지난 2000년 4월 15일, 유난히 병치레가 많았던 나는 사제생활 50년을 기념하는 금경축을 맞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가톨릭대학교 총장 최승룡 신부의 배려와 주선으로 대치2동성당에서 축하식이 베풀어졌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서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 등 동료와 후배 사제들이 공동집전한 축하미사에는 소신학교 후배교사였던 고명철 신부, 최승룡 신부를 비롯해 20여명의 후배신부들과 1000여명의 수도자, 신자들이 참석해주었다.
하느님 앞에 과연 부끄럽지 않게 살았던가 하는 반성의 마음으로 금경축을 맞은 나는 그날 이후에도 두 차례나 더 축하의 자리가 마련된 것이 못내 부끄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했다. 다만 병약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50년 동안의 사제 생활에서 큰 과오 없이 봉헌된 삶을 살도록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뿐이다.
다만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아픔 중의 하나가 있다. 나는 가족들을 모두 북에 두고 혈혈단신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고향이라고는 46년 신학생 시절, 38선을 넘어서 하루 100리씩 사흘 밤낮을 걸어 올라가 부모님과 동생들을 잠시 보고 온 것이 전부이다.
젊었을 때는 견딜만했는데 이제 나이가 더 들고 나니 고향 생각, 헤어진 가족들 생각이 사무친다. 하지만 이제 하늘나라에 가면 모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다시 기운을 내곤 한다.
외숙이자 6?25 때 납치돼 생사를 알 수 없는 이재현 신부님이 평소에 해주던 말씀이 있다. 이 신부님은 틈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사제 생활은 십자가의 길이요 순교자의 삶이며 희생과 가시밭길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이름을 빌어 말했듯이 사제 생활은 아무렇게나 하려면 한 없이 쉽지만 철저하게 살아가려면 그렇게 힘든 삶도 없는 고신극기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후배 사제들은 성인의 이런 당부를 항상 명심해야 한다.
쉽고 안이하게 살아가는 것은 사제의 삶으로서 의미가 없다. 십자가 위에서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고 고통을 받아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나는 압구정 일우(一隅)에서 지나간 옛 추억을 그리면서, 하느님을 우리의 희망이며 힘이고 전부라는 생각으로 매일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 후배 신부들이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상을 지침으로 삼아 그 모범과 정신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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