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용어 중에 「생활 양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 개념은 자신이나 타인 그리고 세계와 삶을 보는 개인의 독특한 방식과 생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고유한 방식, 즉, 개인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의 독특한 행동이나 습관들을 일컫는 말로서 이와 비슷한 말로는 삶의 양식, 생활의 전략 혹은 삶의 지도 등이란 말이 쓰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생활양식은 우리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각자의 생활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각자는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행동과 상황을 넘어서는 행동의 일관성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된다.
생활양식은 어렸을 때 가족 내의 경험이나 형제관계가 중요 결정요인이 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동기 경험 자체가 아니라 이 사건들에 대한 각자의 태도가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고유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어느 행동 하나를 문제삼기보다는 그 행동을 가지고 온 그의 생활양식을 이해하고 그러한 생활양식을 형성하게된 삶의 자리를 살펴볼 때 한 사람의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두 아들의 비유를 듣게 된다. 가지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뉘우치고 일하러 간 아들과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아들을 비교하면서 오늘 복음은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다. 여기서 우선 이해할 바는 이 구절은 대사제들과 원로들을 향한 질타였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 비유의 둘째 아들은 율법을 강조하고, 언어와 문자를 통한 신앙에는 남달리 뛰어나면서도,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에(요한과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일) 둔감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상징하는 것이요, 요한과 예수님을 통한 실천적 회개의 요구가 들려올 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늦게나마 하느님께로 돌아온 세리와 창녀가 큰아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비유가 주는 뜻을 곧바로 알게 된다.
이 비유는 먼저 「과거의 신분」이나 「과거의 죄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회개하느냐? 아니냐?」 하는 「현재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고, 더 나아가 「지적인 신앙고백」이 우리가 걸어야하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좇아 실행하는 「실천적인 실행」이 우리가 가야할 의로움의 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언어의 실천」이 아니라 「삶의 실천」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우리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당시 백성의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영웅적인(?) 삶을 보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최근에 부부문제에 대해 쓴 어느 신부님의 글을 통해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죄라고 하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 또는 「했어야만 하는 것을 하지 않은 것」을 죄라고 생각하면서 죄를 단순히 생각과 말과 행동의 무시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부님은 「죄」라는 것은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자기 중심적인 삶의 방식」이 바로 「죄」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죄인이다」란 말은 「나는 자기 중심적인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희망과 발전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노골적인 이기적 삶 뿐만 아니라 선의의 자기 중심적인 삶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부부 생활을 예로 들면 『내가 힘드니 다음에 하자』 또는 『나는 일을 해야 하기에 다음에 하자』 등등 「자기의 기분」과 「감정」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앞세워 배우자보다 자신의 관심사를 우선하는 삶이 바로 죄라고 하면서 죄의 문제는 단순한 행동과 말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양식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당시 대사제들과 원로들의 문제도 이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행위의 실천의 유무」 즉, 「일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삶의 양식」, 「자기 중심적인 방식」으로 이웃 뿐 아니라 요한과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사업까지 판단하여 하느님의 일을 「자신들의 관심사」 뒤에 두려했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자기 관심 우선주의적 삶」이 바로 문제였을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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