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고향의 문화를 느끼고 흥겨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9월 22일 오후.
2년 전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 광주의 한 양말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노동자 항(28)씨는 고향 친구들과 짝을 이뤄 송편을 만들고 한국의 전통놀이를 즐기며 달콤한 하루를 보냈다.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마음같이 쉽지는 않았으나, 이 시간 만큼은 그 동안 겪었던 외로움과 설움을 녹여버리기에 충분했다.
한국 CLC(Christian Life Community, 그리스도 생활공동체) 부설 이주노동자인권센터(소장=이영희 로사)가 마련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한가위」 명절행사. 이날 베트남, 방글라데시, 몽골, 파키스탄 노동자 50여명은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한국의 최대명절인 한가위의 축제 열기에 빠져들었다.
처음 만들어보는 송편은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함께 나누고 어우러지는 가운데 각양각색의 송편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송편이 솔잎 내음 풍기며 익어가는 동안 이들은 편을 나눠 제기차기, 닭싸움, 꼬리잡기 등 한국의 전통놀이를 즐겼다.
응원전이 열리자 많은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 시간 만큼은 국적도 피부색도 언어도 그리 중요치 않았다. 알아들 수 있는 언어는 아니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나눌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드디어 다과회 시간. 맛있게 익은 송편과 준비해 온 각국 음식을 나누며 서툰 한국말로나마 각자 자기 소개도 했고, 쑥스럽지만 각국 노래도 선보였다. 특히 몽골 노동자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합창해 함께 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가 어림잡아 50만 가까이 된다고 해요. 인구의 1%죠. 외국인 노동자도 우리 이웃입니다. 타국에서 추석을 쓸쓸하게 보낼 이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이영희 소장은 『용인시와 인근 광주시에는 소규모 생산 공장이 밀집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화합?위로행사가 없었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 명절의 기쁨과 정을 전하며,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을이 익어 가는 하늘 아래서 모처럼 마음을 터놓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에서는 수줍은 웃음과 여유로움이 전해져왔다. 가난하고 약한 자의 한(恨)은 찾아볼 수 없었던 이날 오후. 그들의 「코리안 드림」은 다시 한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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