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성품과 높은 친화력」
김운회 주교와 잠시라도 만남을 가졌던 이들이라면 그를 온화한 성품에 친화력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제로 기억하는 게 보통이다. 김주교를 아는 이들 대부분이 「친화력」을 꼽는 것은 주위를 배려할 줄 아는 그의 성품 때문이다. 그러나 김주교를 좀더 깊이 아는 이들은 이런 그의 성품이 타고났을 뿐 아니라 꾸준한 노력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성품 때문인지 김주교의 임명에 대해 동료 사제들은 물론 그가 사목활동의 대부분을 몸담아 왔던 서울 동성중?고등학교의 학생들도 한결같이 「착한 목자」인 그에게 좋은 일이 생겨 기쁘다는 말로 축하의 말을 전한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소탈함과 은연중에 드러나는 모범적 삶은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에도 그를 사목자적 풍모를 지닌 이로 기억되게 하고 있다.
김주교 또한 이런 주위의 믿음이 지난 29년간 충실히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고 밝힌다. 김주교를 동성학교 교장으로 임명한 바 있는 김수환 추기경도 김주교에 대해 『인내할 줄 알고 겸손하게 살아온 덕망있는 사제』라는 평과 함께 『될 분이 됐다』는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김주교가 신망 받는 사제의 길을 걸어오는데는 5대째 구교우 집안으로 내려오는 신앙적인 배경이 밑바탕이 됐다. 가장 작은 교회이자 믿음의 온상인 가정에서 그가 보아온 조상들의 모습은 착하고 성실한 신앙인상 바로 그것이었던 셈이다. 아버지인 고 김재환(바오로) 옹은 서울 대방동본당 기성회 회장으로 오늘날 대방동본당의 초석을 놓는데 기여하는가 하면 서울대교구 은퇴신부 후원회 고문을 지내는 등 삶과 기도 속에서 김주교의 오늘을 있게 한 든든한 지주였다.
또한 김주교의 5대 선조인 김기호(요한) 옹은 「한국의 바오로 사도」로 불릴 정도로 전교 자유의 시기를 전후한 요람기 한국교회의 토대를 닦는데 특별한 기여를 한 이로 전해지고 있어 집안의 독실한 신앙적 내력을 엿보게 한다. 리델, 블랑, 뮈텔 등 세 주교의 손발이 되어 전교회장과 전국 평신도들의 대표인 명도회장을 지낸 김옹의 삶은 고스란히 김주교 집안의 신앙의 힘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셈이다.
특히 김옹은 신앙의 황무지와 다를 바 없었던 서북지방에서 성서 번역 등을 통한 신자 계도와 교육으로 거의 홀로 신앙의 텃밭을 일궈낸 교육자이기도 했다. 이런 내력은 김주교대에 이르러 김주교를 비롯한 3명의 교육자를 배출하는 열매로 결실을 맺었다.
독실한 신자였던 할아버지 김성묵(요셉) 옹은 집안에서 사제 성소가 나오길 한번도 입밖에 내지 않았으나 온화한 품성과 친화력은 고스란히 손자인 김주교대에 전해져 김주교를 비롯, 막내여동생이 수도자의 길을 걷게 하는 결실을 맺고 있다.
김주교는 『부모님이나 할아버지는 한번도 우리 9남매에게 사제나 수도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일없이 몸소 당신들의 삶을 보여주심으로써 우리의 길을 열어주셨다』며 윗대의 기도와 정성을 소개했다.
1973년 사제수품 후 동성중학교 교사로 사목의 첫 발을 내디딘 후 교구 교리사목위원회 중고등학생 담당, 사목연수원 중고등학생 담당, 교육국장 등을 거쳐 지난 95년부터 동성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는 등 사목 생활의 대부분을 청소년교육에 바쳐왔기에 김주교는 누구보다 청소년들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목자로 통한다. 실제 교장으로 재직 중 문제아로 꼽히는 학생들을 처벌하는 대신 몸소 이끌고 함께 꽃동네 봉사활동에 나서 주위의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는가 하면 말썽을 일으킨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만나며 새로운 기회와 용기를 찾아준 일화는 듣는 이의 가슴까지 따뜻하게 해준다.
『그들이 다시 넘어질 수도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이라고 믿는다』는 김주교의 말이 그의 교육자적 풍모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이런 그였기에 동성학교를 지난 99년 학교경영 최우수 학교로 올려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런 결과의 이면에는 학생들이 교사들을 위해 「스승을 위한 기도」를 자발적으로 만드는가 하면 교사들도 「학생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등 그간 꾸준히 가꿔온 신뢰의 분위기가 큰 몫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주교는 어릴 적부터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남의 마음을 잘 살피는 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중학교 진학도 꿈꾸기 힘든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자진해 공고로 진로를 택하기도 했던 그는 이 시절을 거치며 더욱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살피는 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서울 방배동본당 주임(82. 3∼88. 9)과 발산동본당 주임(88. 9∼89. 2) 시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활동을 특수사목에 몸 바쳐온 김주교는 사제가 될 때 마음에 품었던 「항상 감사하라(데살로니카 5장)」는 모토대로 살 뜻을 털어놓는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또 신자들의 기도를 통해 힘을 얻는 사제로 남고 싶다』는 그는 「겸손한 사제」에 앞서 「영성이 깊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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