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라고 기억하는 데 나와 작은 형이 삼촌을 따라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 때에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은 신자가 아니었다. 우리 집은 본당이 있는 숙천읍에서 약 20리 떨어져 있었고 공소도 없었기 때문에, 주일이 되면 삼촌과 함께 걸어서 혹은 자전거 뒤에 타고 성당에 가서 미사와 성체강복 - 그 시대에는 주일마다 성체강복을 드렸다 - 에 참례하곤 했다.
부모님은 비신자
부모님이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 어른들이 배우는 옛날 「천주교 요리문답」책을 배워야 했다. 그 요리문답 책은 3편(제1편: 믿을 교리, 제2편: 지킬 계명, 제3편: 성총(은총)을 얻는 방법, 16장으로 짜여져 있었는데 교리 내용이 문답 형식으로 아주 간단명료하게 서술 되어 있었다. 문답이 모두 320 조목인데 그 가운데서 중요한 조목은 검은 표시가 되어 있고, 덜 중요하거나 전문적 조목은 흰 표시로 되어 있었다. 예비신자들은 그 문답 책을 외워야 했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외워야 하는 것은 검은 표시로 되어있는 조목이고 흰 표시로 되어 있는 조목은 외우지 않아도 괜찮았다. 흰 표시를 한 조목이 많이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교리반 가본 적도 없어
집이 성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는 성당에서는 미사와 성체강복 참례만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가 바빴다. 그래서 나는 교리반에 가본 적도 없고 주일학교에 다닌 적도 없다.
물론 미사 복사를 해 본적도 없다. 오로지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요리문답을 외우는 것이 전부였다. 뜻도 모르면서 열심히 외우기만 했다. 한 주간 동안 열심히 몇 조목을 외워가지고 주일 미사 후에 신부님 앞에 꿇어 앉아서 신부님께서 「문」을 읽으시면 나는 「답」을 외어 바치곤 했다.
드디어 세례를 받는 날이 되었다. 성탄절이었던 것 같다. 다른 기억은 없고 다만 세례명을 택한 기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삼촌께서 나에게 세례명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물으셨다. 그러나 나는 그 때에 성인에 대해서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기 때문에 당황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세례명은 내가 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얼핏 「고해죄경」(告解罪經?지금의 고백의 기도)에 성인 이름이 몇이 나온다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의 고해죄경은 이러하였다. 『오주 전능하신 천주와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미카엘 대천신과 성 요안 세자와 종도 성 베드로 성 바오로와 모든 성인 성녀와 신부께 고하나니…』. 성모 마리아는 여자니까 내 본명으론 할 수 없고 다음에 나오는 성 미카엘 대천사로 쉽게 낙찰이 되었다. 삼촌께서는 이의 없이 그대로 해 주셨다.
숭인상업고로 진학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일제가 한국 국민에게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12월 8일) 해, 4월에 평양에 있는 사립 숭인(崇仁) 상업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시험 시기가 각각 달라서 두세 곳에 시험을 치를 수가 있었다. 나는 담임 선생님이 추천하는 대로 대부분 일본 학생을 뽑는 평양 사범학교와 공업학교를 지원하였다가 보기 좋게 낙방을 하고, 그래도 운 좋게 숭인 상업학교에 입학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서 백민관 테오도로 신부(서울가톨릭대학 교수)를 만나 함께 5년을 지냈다. 개신교 계통의 학교인데 그 당시 우리 학년(갑조 을조 합하여 110명 정도)에는 나를 포함하여 신자 학생이 셋뿐이었는데 그 중 둘이 사제가 되었고 다른 한 친구는 평신도로서 지금도 서울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매일 빵 2개…아련한 추억
평양에서는 하숙생활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바야흐로 일제 말기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인지라 그 때에 내가 살아온 기간 중에서 제일 많이 배고픈 경험을 했다. 1943년부터는 점심식사를 대신해서 학교에서 매일 빵 두개를 나누어 주었는데 토요일이 되면 주일날 몫까지 4개를 받아서 한꺼번에 다 먹어버렸던 일이 지금으로서는 잊기 어려운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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