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태워버릴 듯 뜨겁게 비추는 이국의 태양, 온 몸을 파고드는 육체 노동의 피로 속에서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봉사단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중·고생 및 대학생, 일반으로 구성된 34명의 참가자들은 『해외 봉사활동을 통해 좋은 경험은 물론 「나누고 베푸는 참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7월 29일부터 8월 5일까지 한국천주교 살레시오회와 국제청소년봉사지원단(가칭)이 공동 주관한 「2003 몽골 청소년들과의 희망 일구기」 봉사활동 길에 동행, 취재했다.
7월 29일 오전 7시4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서해와 중국대륙을 건넌 비행기가 3시간여 만에 국제청소년봉사지원단 일행을 내려준 곳은 해발 1600m에 위치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보얀트 오하 국제공항. 공항문을 나서자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 닮은꼴인 사람들이 일행을 반긴다. 자동차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차인 점도 특히 눈길을 끈다.
구 소련제 미니버스 「푸르공」 4대에 나눠 타고 길도, 표지판도 없는 울란바토르 시내로 가는 길. 가도가도 끝없는 초원, 바다보다 넓은 지평선이 펼쳐지는 유라시아 대륙의 한복판이다.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 위에는 몽골 유목민의 전통 원형가옥인 「게르」(Ger)와 말을 타고 양떼와 염소를 모는 유목민이 있었다.
몽골인들의 젖줄기인 툴강을 지나 울란바토르 시내에 접어들자 전연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 거대한 화력발전소 뒤로는 사회주의 냄새를 풍기는 유럽식 콘트리트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차량의 홍수 속에 매연으로 찌든 모습이 한국의 여느 중소도시와 다를 것이 별반 없다.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눈시릴 만큼의 푸른 초원이 다시 펼쳐진다. 살레시오회 이호열 신부가 사목하고 있는 「돈보스코 사랑의 학교」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일직선으로 뻗은 2차선 도로는 군데군데 상처투성이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은 흙먼지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자칫 실수하면 차가 뒤집혀 버릴 것만 같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동쪽 방향으로 1시간여 남짓 달려 도착한 「돈보스코 사랑의 학교」. 이곳은 우리말로 「휴식」이란 뜻을 가진 「암갈랑」이란 지역에 위치해 있다.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세워진 녹슨 컨테이너와 게르 12동이 시야에 들어왔다. 게르 주변으로 염소떼가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 몽골 「돈보스코 사랑의 학교」어린이들이 봉사단을 환영하고 있다.
이신부가 지난 2001년 9월 몽골에 들어와 세운 「돈보스코 사랑의 학교」에는 11세부터 16세까지 13명의 몽골 어린이들을 비롯해 국어(몽골어), 영어, 미술, 음악 등 각 과목을 담당하는 4명의 선생님과 요리사, 경비원 등이 이신부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울란바토르 거리의 맨홀에서 기거하던 「거리의 아이들」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오갈 데 없거나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자 가출한 어린이들이다. 모두가 이신부가 직접 데려온 아이들로, 그는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몽골 어린이들의 환영 공연 후 게르에서 저녁미사를 봉헌한 시간이 밤 9시. 그러나 해는 여전히 서쪽 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다. 고위도에 위치한 몽골의 여름은 새벽 5시30분경 해가 뜨고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어둑어둑해진다고 했다.
누군가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하늘 한쪽을 가리켰다. 지평선 끝 석양 빛 너머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몽골인들은 한국을 「솔롱고스」라 부른다. 솔롱고스는 몽골어로 「무지개」란 뜻.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커다란 무지개가 맑은 초원의 대기 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몽골에서의 첫날은 새벽 2시경까지 계속됐다. 주먹만한 별들이 하늘에 가득할 뿐 이제 초원은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한국 청소년들과 몽골 어린이들이 한데 어울려 이뤄내는 밝은 웃음소리는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듯 했다.
『육체노동을 통해 봉사정신을 실천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싶었습니다』 『한국교회와 청소년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따뜻한 정을 몽골 아이들에게 전하겠습니다』
자신의 각오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드는 솔롱고스의 청년들. 잊지 못할 몽골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갔다.
◆ ‘…사랑의 학교’ 운영 이호열 신부
“배우는 아이들이 하루하루 달라져요”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에게 하느님 전하려 몽골선교 자원
▲ 이호열 신부
지난 2001년 가을 선교의 부푼 꿈을 안고 몽골에 도착한 이호열(시몬.살레시오회) 신부. 살레시오회에서는 타국행을 제의했지만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하느님의 큰사랑을 전하고 싶어 몽골 선교에 자원했다.
이신부가 몽골에 들어와 가장 먼저 시작한 교육, 선교 사업은 가난과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때문에 집밖으로 내몰린 아이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 그는 몽골 정부로부터 1년에 28만원의 세금을 내고 울란바토르 외곽 암갈랑이란 지역에 1만9000여평의 땅을 임대했다. 직접 나무를 잘라 울타리를 세우고, 게르를 지어 교육 시설을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것이 「돈보스코 사랑의 학교」.
이제 이곳에는 이신부가 데리고 있는 어린이들 뿐 아니라 인근 주변 유목민 어린이들도 이곳을 놀이터 마냥 생각하고 드나든다. 인내심 많고 따뜻한 이신부가 마음을 활짝 열고 반겨주니 어린이들에게 이신부는 친구 같은 아버지나 다름없다.
『가르치는 그대로 금방금방 따라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신부는 앞으로도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앞으로 「돈보스코 사랑의 학교」를 지역 내 빈곤 어린이 및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로 꾸며나가고 싶고, 또 여건이 허락된다면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자그마한 「학생 과학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당장 눈앞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하나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체험은 후일 더 많은 이들에게 더 큰 사랑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1956년 경남 마산 출생인 이호열 신부는 82년 살레시오회에 입회, 93년 사제품을 받았다. 광주 살레시오 중.고등학교 과학 교사 등을 역임한 이신부는 2001년 9월 몽골 선교를 자원, 현재까지 「돈보스코 사랑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후원계좌=국민은행 758401-04 -006021(한국천주교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