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이상, 싫어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고독」 같은 것이다. 아무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어도, 요즘 같이 화려한 봄 잔치가 끝없이 되풀이 된다해도, 불현듯 찾아오는 고독 앞에서는 그 누구도 천하무적일 수만은 없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어떤 때는 스스로조차도 자신을 소외시킴으로써, 약을 바짝 올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외롭게 함으로써, 자신과 말할 수 없이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될 때, 그럴 때는 내 목소리, 얼굴, 미소, 주름, 흉터 그 어느 것 하나도 생소하지 않은 것이 없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은 진심으로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나약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이번 주에 살펴볼 잠언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잘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등장한다. 14장 전반부에서이다.
14장
등장하는 주제들, 「지혜와 어리석음의 대조」, 「지혜로 집을 짓는다」는 모티브, 「지혜에 대한 여성으로의 의인화」 등은 이미 살펴본 9장과 매우 유사하다. 지혜를 여성으로 의인화하는 장면은 1~9장을 제외하고는 14장에만 등장하는 소재이기에 이들의 관련성에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10절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오직 스스로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어느 것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절대적 고독을 운명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나의 기쁨을 타인이 온전히 함께 해줄 수 없고, 나의 슬픔 역시 타인에 의해 해결될 수 없음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 주고 있다. 31절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도덕적 당위의 근거를 신학적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다. 약한 이를 향한 폭력은 그 약자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안되는 것이고, 불쌍한 이에 대한 연민은 그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사랑을 보이는 것이기에 그분께 현양이 된다는 것이다.
15장
15장은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볼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잠언들로 가득 차 있다. 필독을 권한다. 15장은 「말」에 대한 주제로 시작된다(1~4절). 말하는 태도는 그 사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일종의 「권력」이요 「힘」일 수 있다. 8절과 9절은 『주님께서 역겨워하신다』는 주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제사(기도)를 바친다 해도 내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하느님을 역겹게 해드리는 행위라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미사에 참석했다 하더라도, 전례의 참 의미는 간데 없고, 그저 이행해야할 종교적 의무감만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했다면, 그건 단지 이기적인 「종교주의」의 한 산물일 뿐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16~17절에서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부와 명예를 갖추는 것이 행복의 절대적 조건인줄 알고 있지만, 설혹 그것을 다 갖추었다 해서 행복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과의 일치, 나 자신과의 정직한 조우, 수용, 감사 이런 것들이 없다면, 나는 늘 모든 것과 불편하게 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8절은 「습관적 분노」에 대하여 경고하고, 19절에는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게으름」을 경고한다. 23절에는 말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는데, 적절한 때와 상황에 알맞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유용한지를 명시해 준다. 31~33절은 교훈과 훈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삶의 진리, 즉 교훈을 멀리하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방기하고 포기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지혜의 교훈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주제,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경외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겸손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있을 때, 그토록 원하던 것은 이제 성큼 자신 앞에 다가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33절).
자신에 대한 정직한 수용
불안, 의심, 혼돈, 절망 같은, 불행하고 완고한 느낌들은 내가 나 자신을 소외시킬 때 다가온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정직한 수용과 생에 대한 겸손한 태도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요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나에 대해 가해질 수 있는 모든 매도와 폭력 속에서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소외시키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누구이며 삶이 무엇인지를 좀 더 분명히 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선거가 끝났다. 자신과 낯설고 불편했던 관계를 오래 지속해와서 고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제 평화 속에 미소지으며 주변의 행복을 수긍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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