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인」 「일흔 살 노인」. 평생토록 따라붙은 이런 꼬리표 덕분에 사람같이 살아보지 못했다. 듣지 못했기에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나이 들고 힘이 없었기에 쓸모 없는 사람으로 치부됐다. 그래서였으리라. 70년 세월은 어두운 나날의 연속이었고 하느님은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덧없는 인생은 이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세상은 그들을 「장애인」이라 불렀지만 하느님은 「영혼을 담아내는 사진가」로 다시 불러주었다.
예술가로 다시 불림 받은 이들은 바로 청각장애인 어르신들의 공동체 「성 요셉의 집」(원장=양선자 수녀) 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사진교실은 듣지 못하는 대신 시각이 뛰어나게 발달한 그들을 위해, 소일거리가 없는 어르신들의 취미생활을 위해 성 요셉의 집이 개발한 프로그램. 도예?풍물?스포츠댄스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함께 하지만 사진교실은 단연코 인기 으뜸이다.
한 손에 꼭 쥐이는 자동카메라, 그건 단순히 사물을 기록하는 기계가 아니라 희망이고 기쁨이다. 조그마한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드넓은 세상을 봤고, 사람들이 흔히 지나쳐버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진을 찍으면서 해냈다는 성취감과 평생 체험하지 못했던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젠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웅얼거림과 수화가 아닌,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사진교실을 시작한 지 3년째. 처음엔 카메라란 물건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고 작동법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사방 천지에 보이는 것을 절제된 사각 프레임에 담아낸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사진의 「ㅅ」자도 모르던 그들을 제법 훌륭한 아마추어 작가로 안내한 건 추교숙(루시아)수녀와 사진작가 박선범(이시도르)씨. 사회복지사인 추수녀가 이같은 프로그램을 경기도청에 건의해 운영할 수 있도록 했고, 필름 넣는 법부터 사진 찍는 것까지 박씨의 인내와 가르침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고 멋진 폼을 잡는 김종구(마태오,75)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촬영다니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사진에 담아낼 때면 가슴이 뿌듯해온다』면서 『청각장애인 노인이지만 배울 수 있고, 무언가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달에 두 번씩 다녔던 사진촬영으로 팔도강산을 다 돌아봤다는 할머니?할아버지들. 올해로 벌써 3번째 전시회까지 여는 수준급 작가들이다. 이번엔 치명자산?한티?나바위?용소막?배티성지 등 전국의 성지를 사진에 담아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내 평화화랑에서 선보이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화보집까지 만들었다는 추수녀는 『한해 한해 늘어가는 실력보다 더 밝은 얼굴로 즐겁게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볼 때 흐뭇함을 느낀다』면서 『이같은 전시가 요셉의 집 어르신들은 물론 장애를 안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031)653-3169, (02)778-7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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