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에 보면 書畵是雅事 一貪癡便成商賈 (서화시아사 일탐치변성상고)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그림과 글씨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일단 탐욕과 어리석음에 얽매이면 장사꾼이 된다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일도 탐욕과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손가락 받는 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종교적인 신심행위나 선행도 이같은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리라 생각합니다. 행위의 이면에 탐욕과 허영심이 있다면 어떤 선행과 신심행위도 위선적인 무엇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데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그 같은 사실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유다교 단죄설교의 일부분으로 율법학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겸손과 봉사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율법학자들의 잘못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는 점과 무거운 짐을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거운 짐이란 잡다한 율법규정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율법학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율법 규정들의 허구성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율법을 선포하는 목적은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하느님의 뜻을 보여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더 큰 목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세금을 제대로 내고 병역과 같은 국민의 기본의무나, 공동선을 위해 지켜야 할 법은 보통사람들의 일이지 특권층이나 힘있는 집단들의 일은 아닌 것으로 착각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리고 신자들에게 불가능한 신심행위들을 현란한 말과 신앙의 힘으로 강요함으로 죄의식을 조장하고 종교를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거짓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자신의 의무에 대해서는 눈을 감으면서 남의 책임과 의무를 따지고 이야기하는 가정과 사회 안에서의 우리 자신들의 모습 속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또 율법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은 남의 눈을 의식하는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이마와 팔에 성구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옷단에는 길다란 술을 달고 다녔고, 또 잔치나 회당에서 윗자리를 찾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스승으로 불러주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성구갑은 성서 구절을 써넣은 작은 통인데 이를 이마와 왼팔 윗부분에 졸라매는 것은 머리로는 율법을 생각하고 왼팔 윗부분이 닿는 심장으로는 율법을 사랑하겠다는 그들의 가상한 마음이 담김 의식입니다. 그리고 옷단에는 청실과 백실을 꼬아 술을 네 곳에 매다는데 이는 하느님의 율법을 상기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그 자체는 나쁠 것이 없지만 문제는 이 같은 행위가 남의 눈을 의식한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스승으로 불리기를 바라는 마음, 잔치나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라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을 의식하는 삶이요,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하느님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필자는 그들이 가진 허영심, 율법학자라는 집단의 허영심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고자 하는 허영심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자신이 내릴 수 없게 만들어 자신에 대한 평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놓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럼으로 허영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솔직한 삶보다는 남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자신의 존재의의를 찾게 됩니다.
아마 율법학자들이 하느님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신앙을 살게 된 것도 바로 율법학자라는 집단이 가지는 허영심의 무게가 신앙의 진실성을 덮어 버린 결과입니다.
어떻든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이러한 잘못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스승 소리를 듣지 말고, 아버지나 지도자 소리를 쓰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문제는 호칭 자체보다는 호칭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탐욕과 허영심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의 말씀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잠재된 근본 욕구인 허영심의 실체를 직시할 것을 요구하면서 허영심과 겸손의 깊은 관계를 우리에게 묵상의 주제로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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