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3일 보건복지부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이하 생명윤리법)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은 수년 동안의 첨예한 논란 끝에 마련된 첫 생명윤리 관련 법안으로 추후 우리나라의 생명윤리 관련 제반 규정을 방향 지을 중요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배아를 실험대상으로 간주하는 등 법 제정의 근본 취지인 인간 생명의 수호와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유관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 외에 산업자원부가 법안 마련 과정에 개입해 압력을 행사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이 법안마저 올해 안 입법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정부의 생명의 존엄성 수호 의지가 과연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 조차 야기하고 있다.
하루속히 관련 법안이 제정돼야 함을 전제로, 생명윤리와 관련해 주요한 쟁점 사항들을 법안이 담고 있는 제반 규정과 교회의 가르침, 과학적 연구 결과 등을 토대로 살펴본다.
인간 배아, 즉 정자와 난자가 수정돼 형성한 수정란은 과연 인격을 지닌 온전한 하나의 생명체인가, 아니면 단순한 세포 덩어리인가?
배아가 단순한 세포 덩어리이며 따라서 일정 시기까지는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따라서 연구를 수행한 후 그 결과로 폐기되는 것도 전혀 윤리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부 생명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반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는 즉시 하나의 온전한 인간이며 따라서 이 배아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배아가 폐기되는 것은 살인 행위라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입법 예고됐던 생명윤리법은 「배아」에 대해 『수정 또는 체세포 핵이식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로부터 분열된 세포군으로서 발생학적으로 모든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까지를 말한다』(제1장 총칙 제2조 정의 3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배아」의 시기 표현이 매우 모호함에 따라 사후 자의적 해석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즉 「모든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라는 것 자체가 이미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배아」에 대한 법안의 시각은 이미 여러 곳에서 배아를 실험 대상, 상업적 이용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법안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인간 배아의 「이용」, 「생산」이라는 용어를 법안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배아의 상업적 이용과 인간을 물질화, 도구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인간 배아의 생산, 이용」에 관한 제4장 제14조 1항에서, 「원시선」이 나타나기 이전까지의 잔여배아에 대해 불임 치료, 질병 치료 등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명기함에 따라 「원시선」이 나타나는 시점(수정 후 약 14일)까지의 배아를 단순한 세포 덩어리로 간주하고 있다. 즉 수정 후 14일 이전까지의 배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실험 대상으로 삼고 폐기 처분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가톨릭대 교수 이동익 신부는 지난 10월 9일 열린 공청회에서 인체 기관의 형성이 수정 후 즉시, 늦어도 24시간 안에 결정된다는 최근 「네이처」지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과학적으로도 원시선의 형성을 기점으로 배아를 생명체인가 아닌가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만약 법안이 14일 이전 배아를 세포 덩어리로 간주해 이에 대한 실험을 허용하게 되면 무분별한 배아 복제, 그리고 현재 50만에서 80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냉동 잔여 배아의 실험과 폐기를 규제할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막히게 된다.
지난 2월 교황청은 「인간 복제(Human Cloning)」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교황청은 「인간 유전자 복제」는 곧 「인간 배아 복제」와 동일한 것으로 불임시술을 위한 「생식적(reproductive)」 유전자 복제, 배아 줄기 세포를 추출하기 위한 「치료적(therapeutic)」 유전자 복제, 유전자 연구를 위한 과정에서의 인간 유전자 복제 등 모두 배아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아 파괴없이 아기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이는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더군다나 배아를 파괴하는 치료적, 실험적 복제는 살인행위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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