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를 전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결혼은 약혼으로 법적 혼인이 성립되고 그 기간은 약 1년쯤 된다. 그동안 신부는 친정집에 머문다. 그리고 결혼 때가 되면 신랑은 친구들과 함께 신부집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신부의 친구들이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마중 나가고 신랑을 신부집에 모신다. 그리고 하객들과 신랑 신부 모두 신랑집으로 가 밤새 혼인잔치를 베풀고 잔치는 일주일 내내 계속된다.
이것이 당시의 결혼 풍습으로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읽어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신랑이 한밤중에 온다는 것도 그렇고 설사 기름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문을 닫아걸고 잔치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기서 신랑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열 처녀는 그리스도인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면 오늘 복음의 부자연스러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제 슬기로운 처녀는 슬기로운 그리스도인을, 어리석은 처녀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것이 되고, 신랑이 한밤중에 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진다는 것이고, 처녀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오신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오실 것이란 사실을 예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중심이지만 혼인잔치로 상징되는 하느님 나라에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등불과 함께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 때가 늦어지더라도 준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즉, 슬기로운 처녀처럼 등잔의 기름에 해당하는 마땅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등잔과 함께 준비해야할 기름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대답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 혹은 사랑의 실천, 혹은 자선과 기도, 생동하는 신앙 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혹시 이 기름은 「가장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무엇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등잔과 함께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어떤 중요한 무엇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일과 비법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체중 감량을 예로 들면 체중감량에는 꾸준한 운동과 식생활의 조절 등 생활 습관의 개선이 가장 상식적인 일이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가장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일은 제쳐둔 체 특효약과 지름길을 찾아 나선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일시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운동과 식생활 등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일의 실천이 있을 때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치 기본적 토대를 무시해도 되는 무슨 특별한 약과 도깨비 방망이 같은 비법이 있다는 허황된 생각에 빠져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일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같은 예는 신앙 생활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종말과 심판,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흔히 기도와 선행, 자선과 보속, 희생과 하느님을 위한 완전한 헌신 등 특별한 무엇을 찾는다. 한동안 유행했던 사이비 종말론의 종교들은 종말과 심판을 특별히 준비하기 위해 직장과 가정을 버렸던 것도 같은 현상이다. 물론 그것의 1차 적인 책임은 사기꾼 같은 거짓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지만, 그 이면에는 중요한 무엇을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과 비법만을 쫓음으로 가장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일을 소홀히 하는 우리 내면의 어리석음도 그것의 이유임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위대한 일은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일에서 시작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위대하고 특별한 일은 상식적인 일의 실천 위에서만이 의미를 가진다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 우리도 그들처럼 정신 나간 행동을 똑같이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슨 특별한 일이나 지름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할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 일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제로서, 주부로서, 그리고 사회의 공인으로서 각자에게 맡겨진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임무와 할 일에 충실하는 것, 그 이상의 더 좋은 준비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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