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폐지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인 흐름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제한적이나마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정치 공간에서 1989년 5월 30일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사폐협)」가 창립되면서 사형제도폐지운동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당시 사폐협의 결성 모체는 천주교를 비롯한 개신교, 불교 등 종교단체의 종교인과 자원봉사자 등 124명으로 구성된 「서울구치소 교화협의회」였다. 이로써 민주화가 사회전반에 확산되기까지 종단별 또는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진행되어온 사형수에 대한 교정교화가 사회에 얼굴을 드러내게 됐다.
가톨릭교회 차원에서는 당시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을 담당하고 있던 추영호 신부가 사폐협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과 함세웅 신부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조성애 수녀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대사회 차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양적으로 확산된 사형제도폐지운동의 틀에서 활동가들은 사형제도에 대한 위헌심판을 청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법 개정운동과 아울러 사형제도에 대한 대국민 의식 전환을 위한 강연회, 성명서 발표, 법률구조 활동, 인권선진국 단체들과의 교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 운동을 질적으로 고양시켜 왔다. 이 가운데 미국 흉악범죄 희생자 가족 및 사형수 가족 대책위원회인 「솔라스(SOLACE )」와 일본 JCCD(범죄와 비행에 관한 전국협의회) 등과의 연대 등 다양한 국제 활동은 우리 사회의 인권지수를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 지난 1972년 3월 창립된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도 사형폐지운동에 있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왔다. 한국 앰네스티는 1974년 「사형제도의 재고를 바라는 건의문」을 대통령 등 주요 국가기관장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1978년에는 사형폐지 캠페인을 벌이고 80년 1월에는 사형폐지운동 그룹을 결성하는 등 시대를 뛰어넘는 활약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종교계를 중심으로 사형폐지운동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지난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가톨릭교회가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형폐지를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가는 등 조직적인 활동을 펼친 것을 기점으로 사형폐지운동은 대중화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형폐지운동이 국민운동이자 전반적인 생명존중운동으로서 승화되지 못하고 있던 현실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온 사형폐지운동은 사형제도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 있는 사회에 신선한 자극제가 됐다. 교회는 사형제도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대사회적으로 본격화했고 사형제도를 폐지한 뒤의 대안을 본격적으로 제시하며 호응을 얻었다.
이런 성과로 지난해 10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 150여명의 서명을 받아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된 생명경시 풍조를 생명존중운동의 흐름으로 바꿔가고 있는 모습은 아시아에서도 귀감이 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