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생활 45년중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3년, 제주교구장으로서 5년, 전주교구장으로서 6년, 마산교구장으로서 14년여 소임을 마치고 11월 11일 은퇴하는 박정일 주교.
대희년과 새천년기를 맞아 시대흐름에 맞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갖추려 심혈을 쏟아온 박주교는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뿐』이라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박주교는 또 『어려운 짐을 벗게 돼 홀가분하다』며 『제대로 한 것이 별로없어, 점수를 매긴다면 낙제점을 맞고 퇴임하는 것』이라고 겸손해 했다.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임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은총의 대희년에 주교회의 의장으로 있었다는 것은 큰 보람이요 은총이었습니다. 저의 재임기간 중에 한국 주교단의 교황청 정기방문이 있었고, 교황님을 모시고 로마 한인신학원 개원식에 참가했던 것 또한 한국교회의 역사에 기록될 일인 것 같습니다.
▲새천년을 막 시작한 이때, 한국교회가 어떤 모습을 갖춰 나가야 할지.
-한국교회의 영성의 특징은 「순교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순교영성을 잘 함양해 왔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러한 영성이 조금 약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이 마당에, 순교영성을 가꾸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교구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 그리고 주교단과 사제단의 일치와 협력이 더 잘되길 소망합니다.
▲지난 몇 년동안 전국 교구장 주교님들이 많이 바뀌셨고 또한 젊은 주교님들이 많이 나오셨습니다. 주교단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주교님의 생각은.
-99년 가을, 제가 주교회의 의장이 된 후부터 새로이 탄생한 주교님들이 여섯 분, 은퇴하신 주교님들이 저를 포함해 다섯 분, 하늘나라에 가신 분이 두 분, 자리를 옮긴 분이 두 분입니다.
좋고 필요한 일이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주교회의 분위기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며 이를 통해 한국교회의 위상이 드높혀지길 바랍니다. 또한 후배 주교님들에게 한국교회가 좀 더 가톨릭적, 즉 보편적이며 세계적인 교회가 되고, 또 세계교회에 이바지하는 교회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길 당부합니다.
▲마산교구장으로서 사목의 중점은?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원하신 교회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모습은 다름아닌 「친교의 공동체」, 「봉사의 공동체」, 「증거의 공동체」입니다.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자들에게 항상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둘째, 「사회복음화」가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한 사목 방침으로서 「가정의 해」, 「도덕성 회복의 해」, 「사회정의 실천의 해」, 「사랑 실천의 해」를 사목목표로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복음화의 가장 적절하고 유효한 도구가 「소공동체 운동」이라고 생각했으며 「소공동체의 해」를 설정해 나름대로 열심히 소공동체 운동 정착을 위해 힘써 왔습니다. 지금도 그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소공동체 운동은 교회의 구조조정 운동이며 꼭 추진해야 하는, 교회의 사활을 좌우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교구장과 교구 사제단과 교구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후임 교구장님은 마산교구의 면모를 새롭게 바꿔 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신심이 깊고 교회 정신이 투철하며 학식이 깊은 분이십니다. 학덕을 겸비하셨고 사무 능력이 뛰어난 분이십니다. 제가 부족하였던 점들을 모두 메워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사제단과 교구민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주교님을 잘 따르고 협력을 잘 해주십사」 하는 것 뿐입니다. 아무리 능력과 재주가 뛰어나도 협력이 없으면 혼자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지체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머리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설정 40주년을 앞두고 있는 마산교구의 당면과제는?
-마산교구뿐 아니라 교회의 과제는 「참 그리스도의 모습을 견지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사회복음화에 전력을 쏟는 것」입니다. 이 과제는 세상 끝 날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마산교구의 당면 과제는 4년 후(2006년)에 맞게 될 교구 설정 40주년을 잘 준비하고 잘 기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4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리스도의 참 교회 모습을 되찾고,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의 징조」를 확실히 읽고 거기에 투신하는 일입니다. 큰 행사나 사업보다도 참 교회로서의 내실을 기하는 것, 확실한 영성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40주년 준비 과정을 지켜보며 기도할 것입니다.
▲사제로서, 또한 주교로서 지난 세월에 대한 소회는?
-하느님 안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의 안배가 아주 큰 데 비해 저의 응답이 너무나 소홀했다는 것을 뉘우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의 불충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좋게만 이끌어 주셨습니다. 사제가 될 때에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리라」(시편 88, 1)를 생활의 모토로 삼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못 살아온 것을 뉘우칩니다. 지금부터라도 이 구절을 좀 더 열심히 묵상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의례적인 인사의 말로 치부될지 몰라도, 저를 도와주고 참아주고 저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제가 상처를 입혔거나 저로 인해 마음 상한 분들께 용서를 청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주교로서 일하는 동안 책임을 다하지 못한데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아울러 신부님들과 교우 여러분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거쳐온 제주교구와 전주교구의 교구민 모두에게 같은 마음을 전합니다.
박주교는 퇴임 후의 계획에 대해 『특별히 계획한 것은 없다. 그동안 바쁜 핑계로 헝클어진 주변을 정리정돈하고 천천히 새로운 생활을 설계할 생각이다. 다만 홀가분한 생활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있다』고 말하며 여느 때처럼 그 덕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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