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가버린 것은 군더더기일 뿐 전체는 아니에요.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겠죠. 놓여나기 위해, 가벼워지기 위해 글을 씁니다』
칠순을 넘긴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박완서(정혜 엘리사벳.72.서울대교구 구리본당)씨가 최근 산문집 「두부」(창작과 비평사/236쪽/8500원)를 펴냈다. 「사람노릇 어른노릇」 이후 5년만에 펴내는 이번 산문집에는 지난 95년부터 올해 6월까지 쓴 스물 셋 편의 맛깔스러운 글들이 담겨있다.
「두부」에는 저자 박씨가 살아오면서 정리한 감정들과 지나온 삶의 성찰들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자연과의 교감 안에서 얻어낸 인생의 지혜도 넉넉히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늘 세태를 꼬집는 날카로움이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두부」인가. 책의 외모가 두부를 많이 닮기는 했으나, 그 이유만은 아니리라. 작가는 표제작 「두부」에서 전두환 전(全)대통령의 퇴임후의 행적과 우리 사회의 숨겨진 뒷골목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감옥에서 출소하는 이들이 먹는 두부를 왜 높은 사람들은 먹지 않고 저리도 당당할까」하고 물으며, 반성할 줄 모르는 이 사회의 풍토를 엄하게 꾸짖는다.
비슷한 주제들로 나눠 「노년의 자유」, 「아치울통신」, 「이야기의 고향」, 「사로잡힌 영혼」 등 총 4부로 엮은 이 책의 백미는 제2부 아치울통신.
『투병중인 화가 손혜경씨와 오래오래 공동작업을 해서 아름다운 책을 만들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서운하게도 지난 초여름 그는 고통 없는 세상으로 먼저 갔어요. 그래서 내 글들은 마지막 잎새만도 못해요』
「아치울통신」은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자락에 거처를 마련한 저자가 날마다 대하는 산과 사람, 꽃, 새, 나비 등을 소재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에 대한 아름다운 깨달음을 그린 부분이다. 저자는 앞마당 살구나무의 1년 살이에서 자연에의 순명을 보고, 기르던 금붕어와 개의 죽음에서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반성한다. 그리고 저녁 노을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일깨운다.
제3부 「이야기의 고향」은 박완서 문학의 발원지인 개성 박적골 이야기와, 소설가로서의 반생 내내 되물어온 「나의 문학은 무엇인가」에 답하는 글들. 제4부 「사로잡힌 영혼」에 실린 글들은 김윤식, 박수근, 이영학 등 작가가 평소 가까이서 지켜봐 온 문인과 예술가를 다루면서 진정한 예술가의 고뇌와 삶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원로」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박완서씨. 그 동안의 역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산문집 「두부」에서도 섬세한 눈길과 깊은 사색 가득한 작가의 따스함이 한가득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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