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한 민간 단체가 작성한 보고서가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10월23일 발표한 「국내 인간배아 관리실태 조사보고」는 『9225명의 인간배아, 그들이 사라졌다』라는 제목으로 국내의 배아 관리 실태가 크게 구멍이 나 있으며 불임치료병원 등의 생명윤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음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대한산부인과학회, 인공수태시술기관으로 등록된 전국 8개 국공립 의료기관의 자료, 산부인과학회지에 수록된 조사보고서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냉동보존 중인 인간배아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는 등 배아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컨대 냉동보존 중인 1996년 인간 배아의 수치와 1997년 인간 배아의 수치 사이에는 9225명의 차이가 나는데 이 통계가 맞다면 1만에 가까운 인간배아가 어디에선가 「살해」됐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생명윤리법의 조속한 제정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행법 안에서는 잔여배아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연구와 실험을 규제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현재 국내에서 냉동보존 중인 잔여배아의 수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통계가 없기 때문에 그 편차가 크다. 무려 8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80만을 상회할 것이라는 추정이 설득력이 있다.
인간배아가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라고 할 때 무려 80만명 이상의 인간생명이 세포덩어리로 취급받으면서 실험실, 연구실에서 과학적 실험 대상으로 사용되고 폐기, 즉 살해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입법예고된 생명윤리법안에서조차 잔여배아에 대한 연구는 허용돼 있다.
보건복지부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14조 1항에서 『서면 동의가 있고 보존기간이 경과된 잔여배아는 발생학적으로 원시선이 나타나기 이전까지에 한해』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부칙에서는 이미 『생산됐고 5년이 지났으며 제공자, 인공수태 시술자 및 그 배우자와 연락이 안될 경우의 배아는 14조 1항 본문 규정에 불구하고 동 조항에 명시된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결국 이 법안에 의하면 불임, 질병 치료와 연구 목적에서 「원시선 이전」의 잔여배아 연구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광범위하게 허용되며 또 이미 생산된 배아는 원시선 이전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허용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배아의 냉동보관은 배아 성장을 강제로 중지시키는 것이다. 인간 개체로서의 배아를 액체 질소 상태에서 냉동시킴으로써 생물학적으로는 죽지 않은 상태에서 냉동 보관된다. 이는 명백하게 인간 생명의 주기에 대한 불법적 남용이다.
그러면 이제 현재 남아있는 배아들, 즉 잔여배아들의 운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들을 야기하고 쉽게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게 한다.
법안은 잔여배아들을 일정 조건을 붙여 광범위하게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생명과학계에서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교회는 이에 대해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이동익 신부(가톨릭대)는 지난해 5월 26일에 있었던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세미나에서 세 가지를 고려할 만한 방법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입양 형식의 대체 출산이 한 가지 방안으로 고려된다. 즉 원하는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이다. 이는 대리모 임신이라기보다는 입양 형식의 임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온전한 해결 방식은 아니다. 다음은 생명연장을 위한 예외적 수단 사용의 철회라는 맥락에서 냉동을 해제함으로써 잔여배아의 폐기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배아에게 지워진 냉동이라는 굴레를 예외적인 방법의 차원에서 윤리적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잔여배아들은 생존을 위한 안전수단이 제공돼야 한다는 점이 윤리적 문제로 남는다. 위의 두 방법이 모두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배아의 영구 보존이 또 한가지 방법으로 고려된다.
이 세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윤리적인 방법을 확고하게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잔여배아가 생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배아가 만들어지고 냉동보관되는 가운데 잔여배아의 운명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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