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신부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그분의 주소라 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어 큰 영광입니다』
대구 효성여자고등학교 행정실장 전병돈(그레고리오·52·대구 봉덕본당)씨. 전실장이 선종한 사제의 이름을 적어온 햇수도 어언 23년. 봉분앞에 세워두는 임시 나무십자가 앞면에 붓글씨로 「고 사제 △△△지묘」(故 司祭 △△△之墓)라고 적고 뒷면에는 출생일자, 서품년도, 선종날짜 등을 기입한다. 돌판이 완성되고 묘토(墓土)가 다져지면 비록 철거되는 십자가지만 어릴 때 할아버지께 배운 붓글씨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지는 몰랐단다.
글을 쓸때는 신부님의 신앙적 삶과 행적을 되돌아 보며 항상 묵상에 잠긴다. 『제가 적는 글에 돌아가신 분의 깊은 영성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대충 적질 못합니다. 신부님께 대한 마지막 보은의 행위라는 마음도 들고요…』
전실장이 지금까지 쓴 사제는 20여명. 많이 쓸땐 한해 4명도 적어봤다. 고 서정길 대주교와 서정덕 주교의 십자가 글도 자신이 썼다.
79년 대구 교구청에서 근무하면서 세례를 받은 전실장은 대구가톨릭대학, 대구 대건고를 거쳐 95년 3월부터 효성여고에서 일하고 있다. 교회산하 기관과 인연을 맺은지 근 사반세기. 자연스럽게 교구내 많은 신부들을 알게 됐고, 선종한 사제의 십자가 문구를 적을 땐 그 신부의 삶이 눈앞에 생생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신부님들의 자세는 저희들 하고 다른 것 같아요. 죽음을 삶의 궁극적 희망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전실장의 젊었을 때 꿈은 「봉사자」. 『큰 봉사는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작지만, 소중한 봉사의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녀들에게는 늘 『최선을 다하라.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전실장. 그는 『봉덕본당 청년회와 주일학교 서기를 하는 딸 진미(세실리아)의 교회 봉사 모습에 흐뭇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의 또다른 소망은 색소폰 연주자가 되어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돌며 소외된 이웃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나중에 은퇴하면 이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전실장의 모습에서 「작은 봉사로 큰 기쁨」을 느끼는 봉사자의 향내가 우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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