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장애인도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과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11월 3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마라톤 동호인들의 최대 축제인 「2002 핑크리본사랑 마라톤대회」가 열린 이날 결승점에는 주위의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부부가 있었다. 비록 우승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기쁨은 그 누구보다도 컸다.
박창원(시몬?56?서울 구로3동본당)?정상순(아녜스?53) 부부. 전동 휠체어에 몸을 맡긴 박씨가 아내의 도움으로 결승점을 통과할 때 주위 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로 완주를 축하했다.
박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자 7급 국가유공자. 그는 해병대 복무 중이던 지난 69년 월남전에 참전, 고엽제 피해를 입었다. 이후 당뇨, 고혈압, 신부전증, 늑막염 등 수시로 찾아오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는 몸이지만, 「대한족구협회 공인심판」 등으로 활동하며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왔다.
그러나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지난 94년,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박씨가 오랜만에 찾은 안양 근교의 산에서 등산을 하다 낙상한 것. 척추 신경이 손상된 그는 하반신 마비가 됐다.
이어지는 병원생활. 박씨는 퇴원 후 3년간 바깥출입을 하지 않을 정도로 슬픔에 빠졌다. 자살을 시도한 적도 여러 차례였다. 그러나 아내 생각에 아이들 생각에 쉽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결심이 서질 않았다.
『이런 몸이지만 아직 제가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그는 지난 월드컵 때 시청 앞에 나가 길거리 응원도 했고,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에도 참여했다. 마라톤 출전은 또 다른 삶을 위한 전주곡일 뿐이었다.
이제 고통이 찾아올 때면 박씨는 휠체어에 걸려있는 묵주를 꺼내들어 기도를 바친다. 한단 한단 기도를 바치다 보면 참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고통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 속엔 평온한 사랑이 깃든다.
그에게는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는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지난 30여년간 활동해 온 꽃동네 돕기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예수님과 약속했어요. 하느님께서 우리 「시몬」 데려가는 날까지 제가 항상 옆에 있을 거라고. 이제 정말 열심히 살거예요』
인터뷰 내내 남편의 두 손을 꼭 잡고 있던 아내 정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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