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톨스토이의 단편집에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열심한 구두방 노인이 매일 한가지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내용은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예수님을 뵙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간절한 기도 때문인지 어느 날 할아버지는 놀라운 꿈을 꾸게 됩니다. 예수님이 내일 할아버지를 찾아 갈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서두릅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저녁이 지났는데도 예수님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찾아온 사람은 불쌍한 거지 청년과, 과일을 쏟아 당황하는 상인, 그리고 굶주린 모자가 그 구두방을 방문하였을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매우 실망한 채 잠자리에 들고, 다시 꿈을 꾸게 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다시 꿈에 나타났습니다.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따집니다. 예수님은 웃으면서 당신이 오늘 세 번이나 할아버지를 찾아갔노라고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모습이 구두방을 방문했던 불쌍한 거지로 과일 장수로 그리고 불쌍한 모자의 모습으로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권자임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복음으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특별히 와 닿는 부분은 축복 받은 사람들에게 하시는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라는 말씀과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최후 심판의 결정적 기준입니다. 그것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자비, 마치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웃사랑의 정신이 바로 최후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여기 있는 형제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와 동일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불가분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어떻든 이 두번째 사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가난한 구체적인 한 개인과 동일시하신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하면 뭔가는 모르지만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이 누릴 수 없는 영광과 엄위, 찬란함과 화려함을 가지신 초월적인 분,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에 사시는 분으로 여깁니다.
물론 이 사실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초월적인 분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초월적인 분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단지 그분은 초월적인 분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찬양과 공경의 대상으로만 머무르게 되고, 이제 우리에게는 그분과의 사랑을 주고받는 일보다는 그분을 섬기고 숭배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복음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하심으로 초월자이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세계에 내재하시고 우리 인간과 깊은 연대를 가지고 계신 분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것은 신앙의 핵심인 인간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랑의 실천의 중요성을 보여줌으로써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 잡힌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고자 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숭배와 흠숭, 찬양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똑같이 만날 수 있는 분이요, 영광의 세계에서만 거처하시는 분이 아니라 목마르고 헐벗고 외로움을 느끼는 구체적인 한 개인과 깊은 사랑의 유대를 맺고 있는 분이요, 전례적 공경만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구체적인 한 인간에 대한 사랑도 요구하시는 분, 이 바로 우리가 신앙하고 주권자로 고백하는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목마르고 배고파하고 외로워하는 예수님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의 얼굴에서,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들과 특별히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실천이 계산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을 의식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분명 한 단계 성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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