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 창설 당시에는 「자선」과 「교육」 영국에서는 신앙 수호를 위해 「성사생활로 인도하는 것」이 주요한 활동이었다.
초창기 회원들은 혼란된 가치관과 종교 분열로 인해 신앙을 저버린 이들을 성사 생활로 인도하며,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을 방문하고 용기를 북돋았다.
특히 로마를 비롯해 유럽 여러 곳에서 교육 역사상 최초로 현대식 교육과정의 학교를 세우고 어린이들과 젊은 여성들에게 흔들림 없는 신앙인으로서 책임감 있는 사회인이 되도록 가르쳤다. 이후 약 380여년동안 전세계 곳곳으로 확장하며 점차 「교육 수도회」로 알려지게 됐다.
현재 한국 관구가 속한 로마 총원의 여러 관구들은 6개 대륙에서 그 지역 사회에 적합한 활동을 펴고 있으며, 법률로써 그리스도교로 개종이 금지된 네팔과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200여 수녀원에 약 25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동정성모회의 한국 진출은 1952년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예수회 박고영 신부가 이 수도회의 독일 뮌헨 분원이 전개하고 있는 교육 사업을 보고 한국 진출을 요청한데서 비롯됐다. 이후 동정성모회는 창설된 지 365년, 한국인이 입회한 후 9년째되던 해인 1964년 5명의 한국인 수녀들과 2명의 독일인 수녀들이 창립회원으로 한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1966년 4월 당시 대전교구청과 인접한 대흥동 520번지에 본원 건물을 신축하고 대전교구장 황민성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가진 한국 관구는 1965년 3월에 대전 성모초등학교와 성모여자중학교를 개교함으로써 본격적인 사도직 활동을 시작했다.
적극적인 사도직 활동을 통해 꾸준한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 동정성모회는 진출 9년 후인 1973년 10월 21일 독립된 관구로 승격, 초대 관구장으로 박기주 수녀가 취임했다.
특징적인 것은 진출 시작부터 수련장, 학교장, 원장 등 모든 주요한 책임을 젊은 한국인에게 맡겼을 뿐 아니라 초대 관구장으로 박수녀를 선임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각 나라의 문화 풍토를 존중하는 토착화 정신과 본국인에게 책임을 맡기는 자율적 운영이라는 동정성모회의 특성을 잘 보여는 부분이다.
또한 1993년 박기주 수녀가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한 국제 수도회 역사상 유례없이 총장으로 선출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한국인 회원만으로 구성된 한국관구는 본부를 대전에 두고, 수련소는 서울에 두어 양성과 영성의 중심지로 삼고 있다.
218명의 회원이 있는 한국 동정성모회는 이곳 진출의 동기가 교육이었던 만큼 국내외 정규 학교는 물론 교구의 교육국 및 지역에 따라 사회교육 시설에서 교육 활동을 하며 더불어 의료, 사회 복지, 특수 지역 선교에 투신하고 있다.
한국관구는 교육 사도직을 위해 대전 성모초등학교, 대전 성모여자고등학교, 서울 성모유치원, 청주교구 보은 성모유치원, 전주교구 연합회?서강대학교 학생사목 등 여러 곳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나환자 정착촌인 익산시 왕궁면 남촌마을 공소, 무의탁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인 「대전 성모의 집」 「수원 메리 워드 공부방」 등을 각각 운영하고 있으며, 대전교구청을 비롯한 8개 교구 22개 본당에 수녀들을 파견, 선교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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