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월간지에 나온 「회의적 환경론자」의 저자 롬보르그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빙산이 녹아 땅이 물에 잠긴다. 열대 우림이 파괴되면서 생물들이 멸종하고 있다.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지구는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이 같은 「당연한 상식」에 롬바르그는 과학적 근거로 비판하면서 환경위기론자들이 내세우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과 같은 환경보호 대책보다는 수십억에 이르는 사람들의 위생환경의 개선이 더 시급하고 절실한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구 온난화는 사실이지만 온난화가 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우려하는 결과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해수면의 상승도 없다는 것이다. 얼음의 밀도는 물의 밀도보다 낮기에 같은 무게의 물보다 부피가 크다. 재미있는 것은 수면 위로 드러나는 부피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빙산이 녹아 물이 되도 물위에 떠있는 얼음 크기만큼 부피가 줄어들기에 수면이 상승할 이유가 없고, 남극은 오히려 최근 14년간 기온이 0.6도씨 낮아져 얼음 두께가 두꺼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인공 온실효과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환경론자들의 주장처럼 노력을 한다해도 온도는 0.15도씨 낮출 수 있을 뿐인데 필요 비용은 약 40억 달러이다. 이 돈을 차라리 저개발국의 위생개선들에 사용하는 편이 인류 복지에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멸종도 재앙이 아니라 전 지구의 역사를 거치면서 꾸준히 이어온 자연현상이며, 매년 1000종이 멸종되더라도 1%가 사라지는데는 10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어떻든 이 분의 주장은 세상은 좋아졌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고, 인구 폭발로 인한 식량문제나, 천연자원의 고갈로 인한 문제 그리고 산림이 사라지거나 생물의 대량 멸종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환경보호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과장 섞인 호들갑 때문에 정말 우리가 시급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우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고, 비현실적인 시나리오에 따라 도출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효과도 의심스러운 프로그램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대신, 이를 저개발국의 긴급한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방지와 열대 우림 보존을 위해 쏟아부을 엄청난 비용을 저개발 국가의 상수도 건설과 의료체계 구축, 식량보급을 위해 사용한다면 훨씬 더 값진 효과를 얻을 수 있기에 몇몇 사람의 「완벽한 안심」을 얻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 정상회의」에서 환경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의적 환경론에 입각한 정책을 반영했다는 점은 이 이론이 상당히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면서, 비현실적이고 과장 섞인 기대감으로 참된 준비의 삶을 방해받는 오늘의 종교인들에게도 하늘나라를 준비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는 주제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대림절이다. 대림절은 성탄을 준비하고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이기에 말씀의 주제도 기다림과 준비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오늘 복음은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의 비유이다. 주인이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과 임무를 주면서 특별히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기에 문지기는 집주인이 돌아올 시간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집주인이 돌아올 시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시간을 모른다는 점이고, 두번째 문제는 이 명령은 모든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은 깨어서 주인을 맞이해야 하는 문지기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깨어있다」는 것은 「현재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지기가 깨어 있는 것은 문을 여닫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各絹, 각자 현재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과 준비란 미래를 위한 일이면서도 동시에 현재의 일이라는 「준비의 현재성」을 깨닫는 것이 바로 「깨어 있음」의 의미인 것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대림 첫 주일! 영원한 미래를 희망하면서 지금 여기서의 나의 책임을 묵상해 보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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