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더 일찍 찾아온 겨울. 눈 많고 바람 거친 강원도의 겨울을 컨테이너에서 보내야 하는 이웃들에게 대림과 성탄은 여느 때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강릉시 한 컨테이너촌
컨테이너 6동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컨테이너 외부 비닐차양막 공사가 한창이다. 「강릉지역 수해복구를 위한 시민종교사회단체 연대회의」 회원들은 지난 11월 초순부터 강릉시 위촌리, 노동상리, 정동진리, 구정리 일대를 돌며 무료로 비닐 차양막을 설치해 주고 있다. 대부분 컨테이너가 급조된 탓에 우풍이 부는 등 보온이 잘 안되고 문을 열면 바로 도로가 나오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아 비닐 차양막 설치는 이곳 수재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컨테이너 앞에 꺾쇠를 세운 후 비닐하우스처럼 바람막이를 설치해주는 이 작업은 세 명이 하루종일 서둘러도 두 동밖에 설치하지 못한다. 현재 30여명의 장기자원봉사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역을 번갈아 가며 작업하고 있지만 전체 600여 동 중 120여 동밖에 설치하지 못했다.
5일째 봉사에 나서고 있다는 개신교신자 김모씨(43)는 『남대천 주변에 살면서 수재민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많이 봐왔다』면서 『지치고 힘들지만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봉사활동을 그만 둘 수 없다』고 말했다.
강릉지역의 경우 총 컨테이너 600여 동 중 12월 중 입주가 가능한 60동과 겨울을 친지나 시내로 나와서 나는 집 60동을 뺀 480동이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컨테이너가 급히 제작됨으로써 단열장치가 충분하지 않고 자부담의 건축비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저소득 가구가 대부분 살고 있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추가 내·외부 단열시공이 필요한 상태다.
한살림 강릉생협 이사장 자격으로 연대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목영주(대건 안드레아·57·춘천교구 임당동본당)씨는 『대부분 컨테이너가 올 연말까지 입주가 가능하다는 정부발표만 믿고 월동준비를 마치지 못한 상태』라면서 『비닐 차양막 공사 등으로 추위를 막고 세수할 공간이라도 생긴다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은 일손이 부족해 연말까지 작업을 마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강릉시 구정면 컨테이너촌에서 비닐 차양막 작업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아직도 산사태로 휩쓸려 내려온 부유목과 가재도구가 그대로 남아있는 이곳에 컨테이너 네 동이 들어서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밤에는 추워서 잠을 잘 수 없어요. 이제 눈이라도 오고 날이 더 추워지면 어떻게 생활할 지 막막합니다』
김예방(베로니카·57·원주교구 북평본당 삼화공소)씨는 퀴퀴한 냄새 가득한 6평 컨테이너 안에서 처지가 비슷한 옆 컨테이너 이웃들과 겨우살이 걱정을 하며 긴 한숨을 토해낸다.
가재도구 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집을 나온 지 3개월. 김씨를 비롯해 이곳에 살고 있는 네 가구 13명의 주민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컨테이너 네 동에 딸린 화장실은 이동화장실 한 개. 상하수도 시설도 급히 공사를 하느라 땅 속에 낮게 묻어 기온이 더 떨어지면 동파 위험이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다. 당장 눈이라도 오면 컨테이너 밖에 내놓은 세간이며 신발 등은 둘 곳이 없다. 그나마 3주전 성당에서 설치해 준 순간온수기 덕에 요즘은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정부에서는 올 연말까지 주택복구를 완료해 수재민들의 입주를 서두르겠다고 발표했지만 김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재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주택을 지을 경우 최소 5000만∼6000만원이 들어가는 데 정부가 지원하는 공사비는 무상보조 1290만원뿐. 모자란 비용은 은행융자를 통해서만 지원 받아야 한다. 결국 집을 짓더라도 자식들에게 빚을 고스란히 물려줄 처지에 놓였다.
▲ 북평본당 삼화공소 김예방씨가 콘테이너에 매달린 곶감을 손질하고 있다. 멀리 북구가 되지 않은 들녘의 부유목과 쓰레기 더미가 김씨의 마음을 더욱 쓰리게 한다.
김금순(데레사·51·원주교구 북평본당 삼화공소)씨 사정은 더 딱하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 8만원을 내고 살던 집이 이번 수해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김씨는 세입자라는 이유로 300만원의 무상지원금 밖에 받지 못했다.
집주인은 내년 집이 완공되면 보증금을 1000만원으로 올려 받아야한다고 하고 있어 당장 컨테이너 사용기한인 내년 4월이면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다.
『김씨는 올 겨울도 걱정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더 막막하다』고 말한다. 폐교 부지를 수소문하고 빈 집을 찾아다닌 지 오래됐지만 아직까지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이런 와중에도 돼지저금통을 하나 마련했다. 성모상 옆에 놓인 돼지저금통은 12월 20일 깰 예정이다. 지난 수해 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본당 신부와 수녀에게 선물이라도 사려고 정성을 모으고 있다.
『몸은 힘들어도 올해 성탄은 더 기쁠 것 같아요. 성당 교우들과 많은 은인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분들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습니다』
지금은 보기 드문 빨간 돼지저금통이 컨테이너의 웃바람을 이길 수 있는, 성탄을 기쁘게 맞이할 유일한 희망으로 김씨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