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 천년기가 시작된 이후 한국 교회 안에서는 내적인 변화를 위한 시도를 꾸준하게 진행해오고 있다. 올해 역시 사목환경의 급변에 따른 교회 쇄신의 필요성에 따라 각 교구에서 내실을 다지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진 한 해였다. 한편 교회의 사회사목 활동 역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과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복지, 생명, 환경, 민족 화해,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인 관심의 영역을 더욱 넓히고 강화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아울러 문화의 세기를 맞아 교회는 이제 복음적 가치가 세속적인 관심과 영역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갈 수 있도록 문화적인 관심을 더욱 깊이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이미 깨닫고 있다. 지난 한 해는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와 이에 대한 교회의 지속적인 대응의 모색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 해 한국교회를 교회/사목, 사회사목, 문화/학술 등 세 분야로 나눠 3회에 걸쳐 정리해본다.
급변하는 사목환경
새 천년기가 시작된지 2년, 한국교회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교회 안팎의 사목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올해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현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보편교회 차원의 노력이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형성됐듯이 새로운 세기로 접어들면서 하나의 시대적인 요청으로 제기된 변화의 필요성은 그 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꾸준하게 제기됐고 이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이 지난 수년간 구체화되면서 이어졌다.
새 천년기에 즈음해 한국교회가 직면한 사회적 변화는 새로운 면모를 향한 교회 쇄신의 기회이면서도 다양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세속화에 따라 모든 가치의 중심이 종교적 영역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하며, 생명과학 등 첨단 과학과 의학 발전에 따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경시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보통신수단의 발달에 따라 기존의 인간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새로운 인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선교와 사목 활동에 있어서도 정보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식의 선교 방식이 모색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전방위적 변화는 한국교회가 사목 체계나 선교, 복음화 노력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과 인식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자각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우선 다양한 사목 체계의 변화가 모색됐다.
사목체계 변화 지속
먼저 서울대교구가 새해 벽두에 발표한 「서울대교구 사목체계 쇄신에 관한 교령」은 기존의 지구장 제도에 더해 본격적인 교구장 대리 제도의 시행을 골자로 교구가 처한 사목환경과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 제도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교구의 경험을 기초로 2000년 10월부터 14개월 동안 연구 검토해 내놓은 교구 쇄신 방안으로 그 핵심은 새로운 복음화와 교회 쇄신을 위한 교구 사목 행정의 효율화를 꾀하는 데 있다. 실시 1년이 되어가는 현재 서울대교구의 지구장 제도의 강화와 교구장 대리 제도는 이제 어느 정도 정착이 됐고 여러 가지 설문 조사 결과를 통해 볼 때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대구대교구 역시 본당 수 증가에 따른 지구 사목 활성화의 필요성에 주목하고 사제단의 의견을 종합해 지난 9월 사제 평의회에서 내년 2월부터 교구 사목체제를 5개의 감목 대리구로 분리해 운영하기로 했다.
한편 지난 10여년 동안 전국 교구의 절반 가량의 교구에서 교구장 주교가 은퇴 등으로 바뀌고 새로운 주교들이 탄생해 전체적으로 주교단이 젊어졌다. 올해에만 해도 인천교구, 마산교구와 제주교구 교구장 주교가 바뀌었다.
인천교구는 최기산 주교가 4월 25일 교구장으로 착좌식을 가졌고 마산교구는 제4대 교구장으로 부교구장 안명옥 주교가 11월 11일, 제주교구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강우일 주교가 새로 교구장 주교로 임명돼 10월 착좌함으로써 전국 교구의 절반 이상의 교구에서 교구장 주교가 바뀌었다. 또 서울대교구에서는 염수정 주교와 이한택 주교가 올초 서품식을 가졌고 11월 21일 김운회 주교가 서품됐다.
이로써 한국 주교단은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대폭 낮아졌으며 풍부한 사목적 경험과 경륜을 지닌 주교들이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아쉬움과 함께 왕성한 활동력과 진취적인 사고를 지닌 젊은 주교들에 대한 기대가 함께 일고 있다.
사회 환경의 변화
교회 내적 변화와 함께 사회 환경의 급속한 변화도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가까운 시일 안에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5일 근무제와 그에 따른 사목적 대처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주교회의 차원에서 주5일 근무제에 대한 관심이 올 봄 정기총회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비록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각 교구별로 주5일 근무제에 대한 사목적 방안을 마련, 실시하면서 지속적인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교구별로 다각적인 방안들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마산교구는 3월 사제 연수회 자리를 통해 교구 차원의 대응 방안을 논의, 금요일 특전미사 허용 가능성, 지역별 미사 시간 차별화, 전례 중심에서 생활 공동체 중심 교회로의 변화 모색, 가정 프로그램 활성화, 영성교육 강화, 여가 생활에 대한 인식 고취, 그리고 청소년 선교 문제 등 전방위적인 사목적 대처 방안을 강구했다. 원주교구는 지역적인 특성을 살려 테마 관광, 관광지 미사 정례화, 가족 단위 피정 시설, 공소 예절 봉사자 양성 등을 논의했다.
주5일 근무제에 대한 여러 차례의 학술 발표회도 마련됐는데 가톨릭신문사가 주교회의 사목연구소와 함께 7월 20일 「주5일 근무제와 한국교회」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데 이어 수원교구에서도 10월 10일 「주5일 근무제와 한국교회의 사목적 대응」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소공동체·선교 활성화
한국교회의 미래 사목의 대안으로서 10여년 이상 꾸준하게 이어져온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올해도 계속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7월 1일부터 3일까지 대전 정하상 교육회관에서 열린 소공동체 전국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향후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지침과 결의를 담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2차 대회에는 전국에서 224명의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참석해 소공동체 운동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볼 수 있었다.
한편 90년대 이후 제기되어온 선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들도 이어졌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2000년을 전후해 뜨겁게 불타올랐던 선교 열기는 올해 다소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규모 선교운동, 가두선교, 방문선교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천주교의 선교운동은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소간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우선 본당 차원에서 이뤄지던 대규모 선교 운동의 열기가 식었다.
이러한 소강상태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선교에 대한 모든 신자들의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지 못한 채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이벤트 형식의 선교 운동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여전히 한국교회의 선교운동은 이전과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하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노드 본격화
한국교회의 중심 교구인 서울대교구의 시노드가 막바지에 이르러 내년 1월 본회의 개막을 앞두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교구 시노드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이후 서울대교구의 교구 시노드 개최는 서울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의 관심사였다.
서울대교구는 현재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청소년·청년, 선교·교육, 교회운영, 사회복음화 등 모두 7개 분야로 나눠 의안 초안을 확정하고 11월 한 달 동안 의안 초안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각 의안들은 교구민 전체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교구장의 검토를 마친 뒤 내년 1월 26일 개막하는 본회의에 상정된다.
인천교구가 2000년 11월 시노드를 마무리하고 수원교구가 지난해 10월 시노드 폐막과 함께 최종 문헌을 발표한데 이어 서울대교구가 교구 시노드를 통해 교구의 면모를 일신하려는 시도는 한국교회의 미래 사목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내년 한 해 동안 시노드를 얼마나 충실하게 진행하고 나아가 시노드 폐막 후 그 성과를 얼마나 충실하게, 효과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는 앞으로 남은 과제가 될 것이지만 교구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시도하는 이 같은 적극적인 노력들이 반드시 새로운 시대와 사회 환경에 걸맞는 적절한 사목 방향의 정립에 도움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124위 시복시성 추진
교황청 시성성은 지난 9월 4일 한국 주교회의에서 요청한 한국 순교자 124위의 시복시성 통합 추진 건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를 통해 앞으로 124위에 대한 예비심사 작업 후에 교황청에 이들의 시복을 정식 청원하게 된다. 특히 이번 승인은 지난 6월 교황청에 승인 요청 공문을 보낸 뒤 불과 3개월만에 답신이 오는 등 교황청의 각별한 관심을 엿볼 수 있어 한국교회의 제2 시복시성이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교회 전망
90년대에 접어들어 성장 속도가 줄어든 한국교회는 90년대말과 2000년 대희년을 맞으면서 성장에 걸맞는 내적 성숙을 기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이벤트성의 행사들을 지양하면서 교구 행정 조직의 개선, 신자 재교육, 소공동체 운동, 문화와 학술 분야의 진흥 등 겉으로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전망하고 차근차근 나름대로의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교구 시노드의 개최는 바로 이러한 노력이 집약되는 자리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급변하는 시대에 맞춘 교회의 쇄신 노력이었고 공의회의 성과는 현대교회를 형성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는 당시에 못지 않은 급속한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적응시키고 개혁해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올해 한국교회의 활동은 바로 이러한 개혁과 내적 성숙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고 이러한 노력들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그리고 새 천년기의 초입에서 이뤄지는 이런 노력들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는가에 따라 새로운 세기 한국교회의 전망이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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