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몸을 담근 이래 저를 스쳐간 파도 중 깊은 흔적을 남겼으면서도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들을 고르고 골랐습니다. 서양미술에 대해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기보다는 제가 받았던 감동을 가까운 벗들과 공유하고픈 열망으로 글을 썼지요』
이미 우리에게 「서른, 잔치는 끝났다」란 시집으로 잘 알려진 최영미(비비안나.41)씨가 「화가의 우연한 시선」(돌베개/216쪽/1만원)을 펴냈다. 「시대의 우울」 이후 5년만에 내놓는 신작 미술 에세이다.
미술사학도인 최씨는 말 그대로 「최영미식 그림 읽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두꺼운 미술사로 빽빽하게 채워진 전문 비평서는 아니다. 시인다운 감수성과 미술사학도다운 관찰력으로 읽어낸 「명작을 보는 눈」인 것이다.
이 책에는 고대 이집트의 초상 조각에서 1960년대 미국 회화까지, 서양미술사의 커다란 흔적을 남긴 거장들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사색과 비평이 담겼다. 66컷의 생생한 컬러 도판도 독자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기원전 2000년의 이집트 미술로부터 헬레니즘과 르네상스, 바로크, 네덜란드 미술, 19세기 20세기 회화에 이르는 서양미술사를 한 권의 책에 모두 담았다.
그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모네와 같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대하며 그들의 삶과 작품 이야기를 화려하지는 않지만 감칠맛 나는 문체로 소개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빌고 있습니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비는 당신의 어린양을 하늘은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는 비록 망가졌으나 영혼은 온전할 수 있고, 아무런 흠 없는 완전무결한 육신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인간을 하느님은 더 사랑하신다고 말하려는 듯이…」 (본문 도나텔로作 「막달라의 마리아」 중에서).
덧붙여진 이야기들은 더욱 더 우리의 눈길을 끈다. 미켈란젤로는 동성연애자였고, 카라바조는 공공연히 살인을 범했으며, 드가는 평생을 독신으로 일관했던 여성 혐오론자였다는 사실은 책에서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읽을거리다.
이밖에도 책 속에는 시인의 섬세한 감성이 묻어나는 21편의 에세이가 줄을 잇는다. 모두가 예술가와 작품, 나아가 삶을 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선」을 보여주는 지적인 산문들이다. 최씨는 책의 서문에서 『유명한 누구의 어느 작품에 대한 몇 가지 단편적인 지식을 제공하기보다는, 우리 주위의 사물과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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