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으로는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비롯한 생명운동 분야에서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특히 사형제도 폐지운동과 관련해서는 교회의 노력에 힘입어 사형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는 평도 뒤따른다. 아울러 외적으로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비롯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에서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여온 한해였다.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정치일정 속에 놓인 한국교회는 올 한해 동안 이같은 국내외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으며 대사회 활동을 전개해왔다. 눈길을 끄는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비롯해 SOFA 개정운동 등도 대선이라는 정치공간이 열림으로써 다양화되고 힘을 지닐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교회는 SOFA 개정운동 등에서 드러나듯 국제적 흐름에 맞춰 외교적 노력을 펼치는 등 국제적인 사안에서도 정의와 평화의 관점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예언자적 몫을 실천해왔다.
- 사형제도 폐지운동
기도회 음악회…
의원 155명 서명
헬렌 수녀 초청도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교회의 관심과 활동은 올해 들어 더욱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사형제도폐지위원회가 중심이 된 사형폐지운동은 지난해에 비해 한층 활성화된 범종교적인 연대운동으로 발전해 사형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천주교를 비롯한 각 종단 지도자들로 구성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이 지난 4월 24일 서울 대각사에서 처음 연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종교인 기도회」를 비롯해 5월에 열린 「용서와 화해를 위한 시민음악회」 4, 5월에 걸쳐 매주 토요일 명동에서 열린 사형폐지를 위한 「가두음악회」 등은 한층 성장한 사형폐지운동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또 5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사형폐지대회에 한국교회 대표들이 참석, 두 나라간 연대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영화 「데드 맨 워킹」의 실제 주인공인 헬렌 프리진 수녀를 초청, 지난 11월 2, 3일 서울과 대구에서 열린 강연회는 사형제도 폐지운동의 지평을 새롭게 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교회는 지난해 10월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 155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의 처리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국회의원들의 비협조로 해를 넘겨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실정이다.
-소파 개정운동
주교회의 정평위
인천 광주 안동서
항의 시국미사
▲ 올 한해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 개정을 위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사진은 8월 10일 의정부역 광장에서 열린 소파개정 촉구 시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왜곡된 소파문제에 대한 일련의 외교적 활동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이어 올 12월 5일에도 주교회의 의장 명의로 소파협정의 부당성을 밝힌 서한을 미국 주교회의를 통해 미 국무성과 언론사 등에 공식 발송하고 소파개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를 위해 주교회의는 미국과 소파협정을 맺고 있는 일본과 독일 등의 구체적 사례를 수집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해 교회뿐 아니라 민족과 사회를 대변하고자 하는 교회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6월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회 곳곳에서는 소파개정을 외치는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와 불합리한 협정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천교구가 교구 차원에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해결촉구와 불평등한 소파(SOFA)개정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8월 본당을 순회하며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추모문화제를 연 것을 비롯, 광주.안동교구 정평위도 「미군장갑차 희생 여중생 사건 거리 사진전」, 소파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전국 곳곳에서 소파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 사회복지
북이탈주민 지원
수해복구에 전력
질적성숙 거둔 해
최악의 물난리로 수도권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구가 크고 작은 수해를 입은 올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나누려는 사랑이 이어져 교회의 하나됨을 체험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수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서울대교구를 필두로 수도권 교구는 의연금 전달을 비롯해 2차 헌금을 실시해 사랑을 모았다. 이런 나눔은 해외에서도 이어져 미국과 캐나다 독일지역 교포신자들이 수재의연금을 모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에 보내오는가 하면 일본교회 신자들도 사랑을 전해왔다.
이번 수해는 또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진 교회의 역량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상설적인 재해대책 체계를 갖춘 서울대교구와 원주교구 등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아픔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 다른 종파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런 바탕에는 그간 교회 내부적으로 꾸준히 다져온 사회복지 역량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특히 교회 각 분야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각종 모색들이 성과를 거두며 사회복지의 질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난해부터 산하 사회복지 시설 및 단체들을 대상으로 등록을 받아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활동이다. 이 사업은 예상보다 빨리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이며 산하 단체들의 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교회 안팎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움직임은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복지활동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3월 발족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선교 200주년 장학회」는 사회복지적 측면에서 북한이탈가정을 지원하는 교회 첫 공식 단체로 본격적인 통일사회복지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생명윤리
첨예한 대립속에
생명윤리법 제정
해넘겨 큰 걱정
교회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는 생명윤리 문제는 올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문제가 불거지면서 내년까지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생명복제와 유전자 치료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대두된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총체적 지침이 될 이 법안을 둘러싸고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생명과학계, 산업계의 논쟁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됐다.
「생명윤리안전법」과 관련해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올해 안으로는 입법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또 해를 넘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생명윤리안전법의 연내 제정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적잖은 문제점이 파생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배아 복제, 종간 교잡 행위는 물론이고 인간 복제 실험을 한다고 해도 이를 법적으로 규제할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관련 법률안이 나오고 공청회를 갖는 등 입법을 위한 과정이 진행될수록 「생명윤리」라는 원래의 취지가 무색하게 점점 더 허용 범위는 확대되고 규제가 약화되고 있는 현실은 반생명적 세력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교회의 몫을 돌아보게 한다. 즉, 지금까지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종교계의 생명 수호 노력이 현실적인 성과를 거두는데 있어서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치열한 로비활동을 펼치는 생명과학계와 산업계에 비견할 만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그리고 생명문제에 대한 대중의 이해 부족 등에 효과적인 대처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생명윤리안전법의 연내 제정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적잖은 문제점이 파생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7월 31일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시위.
- 민족화해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은 올해에도 대북 지원에 힘을 쏟았다. 지난 10월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성직자 43명을 비롯해 수도자 19명, 평신도 41명 등 모두 103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대표단이 서해직항로로 방북해 대북지원 계획을 협의하는 등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 경찰사목
경찰사목도 최근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어서 긍정적이다. 각 경찰서별로 경신실 개소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서울지방경찰청에 경신실이 문을 열어 경찰사목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 전망
사회환경 급변
중장기 대책 마련
일관된 추진 필요
교회의 사회사목 분야는 다양화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그 어느 영역보다 변화에 능동적이고 재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둘러싼 일련의 종교간 연대 활동과 모색은 사회사목 활동의 영역을 확대시켜내며 교회의 위상을 새롭게 하는 지렛대가 되고 있다. 또 사회복지계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타종교, 시민단체, 정부 등과의 다양한 연대를 통해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일보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교회 내부와 아울러 외부를 향한 교회의 다양한 발걸음은 교회 사회사목 분야뿐 아니라 전체의 외연을 확대해내며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신앙생활에만 국한해 자신과 교회를 바라봄으로써 교회에 대한 몰이해 내지는 한정적 이해에 머물고 있던 신자들에게 다른 의미의 교회상을 심어주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의 다변화와 분화 속에서 한 형제라는 공동체의 의미가 더욱 필요성을 더해 가는 가운데 교회의 이같은 모색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세상에 발을 디딘 사회사목 각 분야에서 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사회사목 내실화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3천년기의 문턱을 막 넘어 선 교회가 처음 맞닥뜨린 도전이자 과제이다.
세상에서 교회가 갖는 역할은 부수적이고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본질적인 활동이어야 한다.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는 「사회적 가르침은 사회 현실에 대한 교회의 반성을 우리 시대를 위해 표명하여 주는 것이며 사회 현실을 복음에 비춰 평가하고 사회 안에서의 실제적인 행동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교회가 우선적으로 반성하고 이를 새로운 기점으로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서야 할 때가 어제와 이어지는 바로 오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