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3월에 마산교구에 돌아와서는 교구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기거하면서 바로 이웃에 있는 파티마 병원에 매일 미사를 집전하였다. 금년 봄에 파티마 병원이 창원으로 이사갔기 때문에 내 원목생활도 접어야 했다.
은퇴 초기에는 가톨리교리서 번역위원과 기도서 개정 위원으로 일을 보면서 가톨릭대사전에 여러 항목을 집필하였다.
95년부터는 교구 평신도 신앙대학에 지정 강사로 교회론과 세계 교회사 강의를 맡고 있다.
97년에는 마산교구 성직자 피정과 광주교구 피정에 동원되었고, 2001년에는 부산교구 사제 피정, 2002년에는 원주교구 피정을 도왔고, 2003년에는 청주교구 피정이 예정되어 있다. 교구 내에서는 주로 사순절과 대림절에 특강 요청으로 가만히 있을 여가가 별로 없다.
99년에는 약 40일동안 LA, 덴버, 휴스턴의 교포본당에 순회 강연을 하고 나서 좀 휴가를 가질 여유도 있었다.
2000년 대희년에는 가톨릭신문사의 요청으로 사순절에서 성탄 때까지 매주 「성숙한 신앙」이라는 표제하에, 신자들의 일상 신앙생활에서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사항들을 지적하는 글을 연재하였다. 이 글은 나의 서품 금경축 기회에 소책자로 발간하여 참석한 분들에게 선물로 배포하였다.
2001년 9월 15일은 나의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일 이었다. 교구 사정에 따라서 10월 25일에 성대한 행사를 치렀는데, 본인으로서는 다시 한번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금경축을 지낸 내 연륜을 보고, 어떻게 하면 사제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묻는 후배도 있다. 대답은 간단하다. 언제나 처음 시작할 때처럼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큰 잘못없이 직분을 수행하는 길이다.
또 사제는 직분상 지도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너그러워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지도자로서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자기에게 엄격하려면 신독(愼獨)의 길, 즉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삼가는 것이다.
또 사제는 주님의 구세 사업에 동참하는 증거자이지, 일선에 나선 군대의 소대장이 아니다. 소대장은 일선에 부하들을 장악해야 전쟁을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성직자는 신자들을 잘 파악해야 효과 있게 신자들을 이끌 수 있지만, 결코 신자들을 장악(掌握)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성직자의 직분이지 그 복음을 강제로 먹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말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소기의 성과가 안 보일 때 낙담하거나 의기소침하는 사제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직분을 수행하는데에도 과욕은 금물이다.
여백이 있으니 여담을 하나 해보자. 필자는 어려서부터 왜소하고 병약한 사람인데 오늘까지 큰 일없이 견디는 것을 보고, 건강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가끔 있다. 내가 건강을 논한다는 것은 애초에 우스운 말이지만, 기어이 대답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폭(暴)자든 일을 하지 말 것이다. 폭음, 폭식, 폭주, 폭행, 폭사(思)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인이 물으면, 젊어서부터 절제의 덕을 닦으라고 권하고 싶다. 절제없이 살면서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본래 이 글을 원하진 않았지만 가톨릭 신문사의 강요(?)에 굴복하여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쓸데없는 소리도 많이 한 것 같다. 아직도 선배들이 많이 계시는데 이런 회고담을 한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글 중에 실례를 범한 것이나 없는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독자들의 넓은 아량을 기대할 뿐이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정하권 몬시뇰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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