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풍과 치매로 몸조차 간수하기 힘든 노인들을 모시고 병원에 가기위해 나선 엄기호씨
▲ 몸이 성한 할머니들과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
「지금 처한 현실이 어렵다고 탓하지 말고 네 자신이 행하라」
격언 한 구절이 엄기호(요한.43.원주교구 제천 남천동본당)씨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 어귀에 자리한 「요한네 집」. 작은 성모상이 마당에 자리한 100평 남짓한 가건물에 12개의 방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요한네 집은 오갈 데 없는 중증노인과 장애환자들을 위한 재가복지 공동체이다. 엄씨는 이곳에서 부인과 두 딸, 그리고 할머니 15명과 함께 살고 있다.
친부모조차 부양하기 싫어 내 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 엄씨는 중풍과 치매로 몸조차 간수하기 힘든 노인들을 부모처럼 모시고 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수도자의 삶을 동경했어요. 하지만 부르심이 없더군요. 수도자의 꿈을 접는 대신 봉사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죠』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정(情)이 그리운 노인들. 하루가 멀다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들을 냉대하는 복지시설이 의외로 많음을 알았다. 엄씨는 이들을 위한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기로 하고 유일한 재산이었던 아파트를 처분했다. 장인에게 돈을 빌리고 카드로 대출을 받아 99년 요한네 집을 마련했다.
『봉사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엄씨는 망설이지 않았다. 엄씨는 자신의 박봉과 할머니들의 생계보조비로 요한네 집을 꾸려나가고 있다. 아직도 수천만원의 빚을 갚지 못하고 있지만 그저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기쁨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사실 가족들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남들 다하는 외식 한 번 못해보고, 아이들 생일잔치도 집에서 한 번 못하고 항상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으로 때워야 했어요』
엄씨가 출근하고 나면 할머니들 빨래와 허드렛일은 부인 신난숙(율리안나.41)씨의 몫이다. 하지만 4년이 넘도록 군소리 한번 없이 묵묵히 자신을 따라 준 부인에게 엄씨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이제는 요한네 집을 직접 찾아 도움을 주는 이들도 꽤 생겼다. 그리고 하느님의 기적은 또 하나의 은총이다. 할머니들 진료비로 고생할 때는 꼭 그만큼의 액수만큼 후원금이 들어왔다. 쌀이 부족할 때면 누군가가 쌀 가마니를 문 앞에 놓고 가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주인이에요. 우리는 그저 할머니들을 위한 하인일 뿐입니다』
그 동안 방송사에서도 여러 번 취재요청이 왔지만 매번 거부했다. 식구처럼 살아야 하고 그분들을 위로하고자 마련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주인공인양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한 거야 많죠. 그런데 그렇게 필요한 것 찾으면 한도 끝도 없답니다. 그저 하느님이 주시는 데로 살 겁니다. 퇴직금 받으면 빚부터 갚고 더 넓은 공간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엄씨 부부는 청원의 기도를 바치지 않는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엄씨부부는 성모상 앞에 서서 오늘도 기쁜 하루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문의=(043)651-2717 요한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