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돌이와 갑순이가 한 마을에 살았드래요. 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드래요…』
『할머님, 이 때는 왼쪽 손을 드셔야 해요』
수철리 공소안에서 때아닌 갑돌이 노래가 흘러 나온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10여명이 노래에 맞춰 신명나게 율동을 펼친다. 벌써 1시간째.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맺혔지만 지친 기색이 없다. 오히려 입가엔 미소가 가득하다.
성탄 준비였다. 대전교구 신례원본당(주임=최교성 신부) 관할 공소인 수철리 교우촌 신자들이 24일 본당에서 있을 성탄 전야제 축하잔치에서 장기자랑을 선보이기 위해 며칠전부터 매일 모였던 것. 동심으로 돌아가 모처럼 성탄의 설레고 들뜬 마음을 만끽하고 있는 이들에겐 이번 성탄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간직될 것 같았다.
한 바탕 신명나는 춤 연습이 끝나자 이들은 자연스럽게 황해진(알렉산델.49) 공소 회장 집으로 모여 옛날 성탄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지금이야 도로가 좋아지고 차량이 있어 성당까지 20여분이면 갈 수 있지만 불과 20~30여년 전만 해도 24일 새벽에 공소를 나서 20km 정도의 눈길을 걸어 오후 늦게서야 도착했다고. 예전 공세리본당에서부터 구합덕, 예산본당 관할이었을 당시만 해도 산을 넘는 등 꼬박 하룻길을 걸어야 했다. 여기에다 교무금으로 쌀을 등에 지고 가야했기에 더욱 쉽지 않은 길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손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힘든줄 모르고 기쁜 맘으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24일 저녁엔 성당 강당이나 신자 집에서 머물며 돈독한 정을 쌓기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참 그립습니다』
윤재흥(타대오·81) 할아버지가 말문을 열자 이번엔 이민순(요안나·82) 할머니가 『그땐 또 모두가 궁핍해서 우리가 먹을 양식을 가지고 갔었잖아요. 그 때 함께 나누어 맛있게 먹던 음식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마디 거든다.
또 황석두 루가(1866년 순교) 성인의 5대 손인 기완(요셉.79) 할아버지는 『1년에 2번 판공을 위해 신부님이 교우촌을 방문할 시기는 우리에겐 큰 잔치요 축제였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학교에도 가지 않고 신부님 맞을 준비를 했고 어른들은 신부님께서 머무실 숙소와 음식 준비에 만전을 기했죠. 특히 모든 신자들이 한복을 입고 마을 어귀에서부터 신부님을 기다렸고 남성 신자들중 일부는 5리 정도 앞에서 신부님을 맞았습니다. 당시 교우촌 신자들이 너무나 궁핍해 쌀밥 구경하기가 힘든 시기였는데도 신부님을 잘 모시기 위해 조금씩 돈을 갹출해 쌀밥을 정성껏 준비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 충남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 공소 신자들. 충남지역 복음화의 산실로 황석두 루가 성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몇 대를 거쳐 신앙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지금은 5가구에 불과한 교우촌이지만 신앙의 맥을 잇기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자녀들과 젊은이들이 돌아와 함께 신앙을 일구며 살아갈 것을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무상하듯 지금의 수철리 마을은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쇠락해졌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회지로 빠져 나가고 대부분 주민들의 연령층이 70~80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수가 급속도로 줄어 현재 8가구만이 남아있는데 그중 신자 가정은 5가구에 불과하다. 공소 신자들은 자칫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교우촌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떠 안게 됐다.
다시 돌아온 예수 성탄 대축일. 수철리 공소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 이곳에도 새로운 희망의 불꽃이 타오를 수 있길 주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선조 신앙인들이 지켜온 이 터전을 결코 사라지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
『그동안 어떻게 이어온 신앙 교우촌인데 이대로 허무하게 없어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농촌이 되살아나 우리 교우촌도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 것이란 믿음과 신념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바라는 성탄절 소망이라면, 우리 자녀들과 많은 젊은 신자들이 돌아와 이곳에서 함께 신앙을 일구고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젊음과 활력이 넘치는 교우촌. 이는 수철리 공소 신자들이 희망하고 꿈꾸는 공동체 모습이다. 성탄절 장기자랑에 참여하기 위해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이들은 아기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 가운데 세상 구원을 위해 오셨듯이 수철리가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교우촌이 활성화돼 새로운 신앙적 열정과 기쁨이 가득할 수 있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 수철리 공소 신자들이 성탄을 기다리며 공소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
■ 수철리 공소 황해진 회장
“물려 받은 것도 물려 줄 것도 신심뿐”
▲ 황해진 회장은 『순교 성인의 후손으로서 신앙을 이어가고 공소를 활성화 하는데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10여년간 수철리 공소 회장직을 맡고 있는 황해진(알렉산델.49)씨는 「교우촌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황석두 루가(1866년 순교) 성인의 6대손이기도 한 그는 작금의 공소 현실이 많은 젊은이들과 주민들이 도시로 나가면서 어려워졌지만 순교 성인의 후손으로서 신앙을 이어나가고 공소를 활성화 하는데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회장은 아버지 기완(79?요셉)씨의 대를 이어 공소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교우촌 신자들중 가장 젊은층에 속하는 황회장은 최근에 이곳으로 이사온 허정화(모니카)씨와 주일 공소예절 진행을 비롯해 반모임 준비, 차량 봉사 등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서야 길이 포장됐다고 하지만 버스가 하루 3번만 다니는 시골이라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차량봉사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부인 정일순(도로테.43)씨와의 슬하에 3남1녀를 둔 황회장도 한 때 또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날 생각도 수차례 했다. 하지만 자식들까지 수 대에 걸쳐 이곳에서 살았고 무엇보다 공소가 존폐위기에 처해있어 마음을 바꿨다고.
『그동안 동료들이 살길을 찾아 도시로 떠나는 것을 보고 한 때 고향을 등질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이곳에 계시고 이렇게 하나 둘 떠난다면 정말 노인분들 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들었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신앙을 지켜온 황해진 회장. 기도문 외우느라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혼나던 생각이 생생하다는 그는 『선조 성인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고 참된 신앙인으로서 공소를 지키고 신앙을 이어나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나 역시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철저한 믿음 속에 살다간 조상님들의 깊은 신심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