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가장 오래 있었던 독일에서의 성탄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대림절 이맘때면 잠시마나 독일을 향한 그리움에 젖기도 한다.
대림절이 시작되는 12월이 되면 독일인들의 삶은 유난히 아름다움과 활력으로 넘쳐흐른다. 집집마다 손수 만든 대림환 위에 어울리는 색의 굵은 초 4개를 얹어 거실 탁자 위에 놓는다.
방안엔 온통 전나무 향기가 그윽하고 크리스마스 때만 먹는 수십 가지 종류의 쿠키들을 손수 만들어 먹음직스럽게 멋진 접시에 담아놓는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아이들만을 위해 대림절 달력을 만들어주는데 성탄을 한달 앞두고 달력 위에 그려진 창을 열면 매일같이 맛있는 초콜렛이 들어있다.
창의력이 뛰어난 다니엘의 아빠는 합판을 사다가 톱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자른 후 초록색 페인트칠을 하고 28개의 못을 박는다. 우리는 그곳에 걸어둘 선물을 벌써 몇 주 전부터 사서 모으고 예쁜 포장지로 싸서 걸어놓았다. 그것이 완성되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던지…. 잠꾸러기인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 다니엘은 학교에 가기 전 그 선물들을 풀어보고 기뻐했었다.
대림절 달력의 매력은 하루에 꼭 한가지 선물만 열어볼 수 있는 것이다. 아들은 내일은 어떤 선물일까 하는 호기심과 기다림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전통을 다니엘이 만 10살 될 때까지 계속 해왔던 것 같다. 지금도 이맘때면 마냥 행복해했던 소년시절의 다니엘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는다.
이렇게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절이 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전통적인 독일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미리 해 놓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기 전 오후에는 아이들을 밖으로 놀러 내보내고 부모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며 가족들을 위한 선물들을 트리 밑에 보기 좋게 쌓아놓는다.
저녁식사 전 아이들을 트리가 장식된 방으로 안내하면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선물꾸러미를 끌어안는다. 이 광경이야말로 기쁨과 감동 그 자체이다. 아이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크고 귀중한 선물임을 우리 부모들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정장을 한 가족들은 모두 식탁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이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결코 식탁의 음식이 화려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주 가난하게 오셨기 때문에 그날 저녁만은 아주 소박하게 식사를 한다. 그런 후 성탄절인 25일에는 아주 잘 차려진 풍성한 식탁에서 모두 기쁨을 나누게 된다.
1963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보낸 웃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브가 기억 난다. 유학생었던 나는 어느 독일 가정의 초대를 받았다. 수녀님께서 경영하시는 내가 살던 기숙사는 늘 음식이 시원치 않아 그날 만큼은 아주 화려한 식탁을 상상하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그 초대에 응했다. 그러나 더운 음식을 점심 한끼만 먹는 독일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서 더운 음식을 저녁에 먹을 리가 없다. (지금은 그것을 알고 또 이해하지만 그때는 도저히…)
검은 빵에 차디찬 청어 절임, 그리고 오이피클이 전부였다. 그때의 실망이 얼마나 컸던지, 그 후 저녁 초대를 받으면 조금씩 미리 먹고 갔던 일이 생각난다.
물론 이와 같은 것은 아주 극단적인 예겠지만, 그토록 검소한 독일인들은 손님이 왔다고해서 허세로 더 좋은 음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자기들이 먹는 대로 자연스럽게 손님을 대접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아주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 그렇게 소박한 저녁식사를 한 후 그 가족들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피아노 레슨비라고 하면서 20마르크를 손에 쥐어주었다. 40년 전이니까 아마도 지금 20만원의 가치가 있는 큰 금액이었던 것 같다.
진정한 성탄축제는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과의 나눔임을 독일 사람들은 알고 또 실천하고 있다. 많은 가정에서 불우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풍성한 식탁을 나누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성탄절의 기쁨을 나누고 사는가?
있는 자가 결코 뽐내지 않고 없는 자가 결코 기죽지 않고 사는 독일인들의 삶이 진정 그리스도적인 삶이 아닌가.
요즈음 독일 내 모든 교회가 교우들의 냉담으로 텅 비어 있다고 모두들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너무도 오랜 세월을 비판적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심어진 오랜 역사와 신앙심은 결코 그들을 무자비하거나 천박한 국민으로 만들지 못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적인」 진정한 크리스찬으로 만드는 것인지 우리들은 모두 깊이 묵상해야할 것이다.
백화점마다 울려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진열된 상품들이 결코 우리를 더 이상 기쁘게 할 수 없음을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먹고 마시고 춤추는 축제가 결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아닌 것도 우리 젊은이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이토록 어두운 삶의 그림자 속에서 시달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아주 미천하게 오신 예수님. 그분만이 우리의 희망이요, 온전한 기쁨임을 고백하면서 독일 아이들이 그렇게, 날마다 새로운 기대로 열어보던 그 대림절 달력의 기쁨을 우리는 영적 기쁨과 기다림으로 바꿀 수 있어야하겠다.
그렇게 매혹적인 독일의 크리스마스 풍경도 결코 나를 다시 독일로 데려가지 못한다. 이제 나의 삶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펼쳐지고 있기에.
성탄절 방학을 이용해 이 엄마를 찾아줄 19살짜리 아들 다니엘과의 만남은 올해 나의 최고의 성탄선물이 될 것이다. 눈이 수북이 쌓인 정원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놓고 나는 기다린다. 빛으로 와주실 나의 하느님, 나의 예수 아기를. 그리고 믿는다. 모든 이의 구원이요 생명이심을.
▲ 진정한 성탄축제는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과의 나눔임을 독일 사람들은 알고 또 실천하고 있다. 사진은 로덴부르크 크리스마스 박물관 전경.
■ 김청자 교수(아녜스·58·메조 소프라노)는…
1963년 진명여고 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아우구스부르크 음악원과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 20년간 오페라 가수로 활동해왔다. 한국의 프리마돈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교수는 국내에서도 국립오페라단원, 중앙대학교와연세대학교 교수를 지내며 성악무대에서 맹활약했다. 현재는 지난 94년부터 한국 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양성에 전념하고 있으며, 일체의 외부활동 없이 교회 내에서 미사 특송이나 자선음악회만을 갖고 있다.